제4장 섭리적 동시성으로 본 복귀섭리시대와 복귀섭리연장시대

Chapter 4 The Parallels between the Two Ages in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원리강론

앞 에서 이미 논술한 바와 같이, 복귀섭리(復歸攝理)의 목적은 결국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하려는 데 있으므로, 그 섭리가 연장됨에 따라서, 그 기대를 복귀하려는 섭리가 반복되어 가는 것이다. Since the ultimate purpose of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is to lay the foundation for the ‎Messiah, if it is prolonged, the dispensations to restore this foundation must be repeated.‎. 그런데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하기 위하여는, 첫째로 복귀섭리를 담당한 어떠한 중심인물(中心人物)이 어느 기간을 두고 어떤 조건물(條件物)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상징헌제(象徵獻祭)'를 함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세워야 하고, 둘째로는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워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실체헌제(實體獻祭)'를 함으로써 '실체기대(實體基臺)'를 이뤄야 한다. 그러므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하려는 섭리를 반복하여 온 복귀섭리의 노정은 결국 '상징헌제'와 '실체헌제'를 탕감복귀(湯減復歸)하려는 섭리의 반복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섭리노정의 되풀이로 이루어지는 섭리적 동시성(攝理的 同時性)의 시대는, 결국 위에서 말한 두 헌제를 탕감복귀하려 했던 섭리적인 사실로써,그 동시성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In the course of the providence, the repetition of dispensations to restore the foundation for the ‎Messiah has meant, in effect, the repetition of dispensations to restore through indemnity the symbolic ‎offering and the substantial offering.‎

우 리는 이제 이러한 원칙하(原則下)에서 각 섭리시대의 성격을 살펴보기로 하자. 그런데 그 시대적 성격을 파악하기 위하여는, 그 섭리를 담당했던 중심민족(中心民族)과 그 중심사료(中心史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First, however, we need to identify what groups of people have had the central responsibility for God’s ‎providence and the historical sources which can shed light on their history.‎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복귀섭리를 이루어 나온 중심민족과 그 역사적 자료를 자세히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다.

인 류역사는 수많은 민족사(民族史)로써 연결되어 왔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중에서 어떤 민족을 특별히 택하셔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하는 전형적(典型的)인 복귀섭리노정(復歸攝理路程)을 걷게 하심으로써, 그 민족으로 하여금 천륜(天倫)의 중심이 되어 인류역사를 향도(嚮導)하도록 이끌어 나오신 것이다. 이러한 사명을 위하여 택함을 받은 민족을 하나님의 선민(選民)이라고 한다. Human history consists of the histories of countless peoples. Nevertheless, God has specially chosen ‎certain people to walk the model course of restoration to lay the foundation for the Messiah. God puts ‎them at the center of His providence and guides them by His Principle. Their history, in turn, steers the ‎course of human history as a whole. A nation or people entrusted with such a mission is called God’s ‎chosen people.‎

하 나님의 선민은 본시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를 세운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써 이루어졌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는 복귀섭리시대(復歸攝理時代)의 섭리를 이루어 나온 중심민족은 이스라엘 선민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사는 이 시대에 있어서의 복귀섭리역사의 사료(史料)가 되는 것이다. God’s first chosen people consisted of the descendants of Abraham, Isaac and Jacob, who had ‎established the family foundation for the Messiah. Therefore, the nation centrally responsible for God’s ‎providence in the Age of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was Israel. The Old Testament, which records the ‎history of Israel, provides the source material with which to study the history of the providence in that age.‎

그 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준 후부터 선민의 자격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것을 예견하신 예수님은 일찌기 포도원의 비유를 말씀하시고 그 결론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 21 : 43)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또 바울도,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후손이라고 해서 그들이 이스라엘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뜻을 받드는 백성이라야 이스라엘이 된다고 하였던 것이다(롬 9 : 6∼8).

However, from the time that they rejected Jesus, the Jewish people lost their qualification to be centrally ‎responsible for God’s providence. Foreseeing this, Jesus uttered the parable of the vineyard, saying:‎

The kingdom of God will be taken away from you and given to a nation producing the fruits of it. —Matt. 21:43‎

St. Paul said in anguish over his kinsmen, the Jewish people:‎

For not all who are descended from Israel belong to Israel, and not all are children of Abraham because they are his ‎descendants . . . it is not the children of the flesh who are the children of God, but the children of the promise are reckoned ‎as descendants. —Rom. 9:6-8‎

사 실상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된 복귀섭리연장시대(復歸攝理延長時代)의 섭리를 이루어 나온 중심민족은,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라, 그들이 다하지 못한 하나님의 복귀섭리를 이어나온 기독교 신도들이었다. 따라서 기독교사가 이 시대의 복귀섭리역사의 사료가 되는 것이다 Indeed, the people who became centrally responsible for the providence in the Age of the ‎Prolongation of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were not the Jews, but rather the Christians. They assumed ‎the mission to accomplish God’s unfulfilled providence of restoration. Accordingly, the history of ‎Christianity provides the source material for understanding providential history in this age.‎ When we compare the Old Testament to the New Testament, the five books of the Law (Genesis ‎to Deuteronomy), the twelve books of history (Joshua to Esther), the five books of poetry and wisdom ‎‎(Job to the Song of Solomon) and the seventeen books of prophecy (Isaiah to Malachi) in the Old ‎Testament correspond to the Gospels, Acts, the Letters of the Apostles and Revelation, respectively.‎ 이러한 의미에서, 구약시대(舊約時代)의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후손을 제1 이스라엘이라고 한다면, 신약시대(新約時代)의 겨득교 신도들은 제2 이스라엘이 되는 것이다 the descendants of Abraham in the Old Testament Age may be referred to as the First Israel, and the ‎Christians in the New Testament Age may be called the Second Israel.1

구 약과 신약의 성서를 대조해 보면, 구약성서의 율법서(律法書, 창세기에서 신명기까지의 5권), 역사서(歷史書, 여호수아에서 에스더까지의 12권), 시문서(詩文書, 욥기에서 아가까지의 5권), 예언서(豫言書, 이사야에서 말라기까지의 17권)는 각각 신약성서의 복음서(福音書), 사도행전(使徒行傳), 사도서한(使徒書翰), 요한계시록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런데 구약성서의 역사서에는 제1 이스라엘의 2천년 역사가 When we compare the Old Testament to the New Testament, the five books of the Law (Genesis ‎to Deuteronomy), the twelve books of history (Joshua to Esther), the five books of poetry and wisdom ‎‎(Job to the Song of Solomon) and the seventeen books of prophecy (Isaiah to Malachi) in the Old ‎Testament correspond to the Gospels, Acts, the Letters of the Apostles and Revelation, respectively.‎ 전부 기록되어 있지만, 신약성서의 사도행전에는 예수님 당시의 제2 이스라엘(기독교 신도)의 역사만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신약성서의 사도행전이 구약성서의 역사서에 해당하는 내용이 되기 위하여, 예수님 이후 2천년 간의 기독교사(基督敎史)가 거기에 더 첨가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기독교사는 예수님 이후의 복귀섭리역사(復歸攝理歷史)를 꾸미는 사료(史料)가 되는 것이다.

상 기(上記)한 제1 제2, 두 이스라엘의 역사를 중심하고 동시성으로 이루어진 복귀섭리시대와 복귀섭리연장시대를 이루고 있는 각 시대의 성격을 대조하여 봄으로써, 사실상 인류역사(人類歷史)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일관한 공식적인 섭리에 의하여 엮어져 왔다는 것을 더욱 명백히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we can compare the histories of the First and Second Israels and their impact on the character of ‎each period in the two providential ages. Recognizing a pattern of parallel periods, we come to know more ‎clearly that history has been shaped by the systematic and lawful providence of the living God.‎

제1절 애급고역시대와 로마제국 박해시대 The Period of Slavery in Egypt and the Period of Persecution in the Roman Empire

노 아로부터 아브라함까지의 400년 사탄 분립기간은 아브라함의 헌제 실수로 말미암아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으므로, 이 400년 기간을 다시 탕감복귀(湯減復歸)하기 위한 애급고역시대(埃及苦役時代)에는, 야곱과 그의 12자식을 중심한 70가족이 애급(埃及)으로 들어간 이래, 그 후손들이 400년 동안 애급인들에게 처참한 학대를 받았었다. 이 시대를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로마제국 박해시대(迫害時代)에 있어서도, 이스라엘 선민들이 예수님을 산 제물로 바치는 헌제(獻祭)에 실수하여 그를 십자가에 내줌으로써,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된 메시아 강림준비시대(降臨準備時代) 400년의 사탄 분립기간을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중심한 12제자와 70문도 및 기독교신도들이 로마제국에서 400년 동안 처참한 박해를 당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 After Jacob entered Egypt with his twelve sons and seventy kinsmen, their descendants suffered terrible ‎abuse at the hands of the Egyptians for four hundred years. This was for the restoration of the four-‎hundredyear period from Noah to Abraham—a period for the separation of Satan—which had been ‎defiled due to Abraham’s mistake in his offering. The corresponding period of persecution in the Roman ‎Empire was to restore this previous period through parallel indemnity conditions. Jesus’ twelve apostles ‎and seventy disciples were the first of many generations of Christians who suffered severe persecution in ‎the Roman Empire over a period of four hundred years. By enduring this suffering, they were restoring ‎through indemnity the four-hundred-year period of preparation for the advent of the Messiah—a period ‎for the separation of Satan—which had been defiled due to the Jewish people’s mistake in not honoring ‎Jesus as a living sacrifice but leading him to the cross.‎

애 급고역시대(埃及苦役時代)에 있어서는, 제1 이스라엘 선민들이 할례(割禮)를 하고(출 4 : 25), 희생(犧牲)을 드리며(출 5 : 3), 안식일(安息日)을 지키면서(출 16 : 23), 아브라함의 헌제 실수로 인하여 침범한 사탄을 분립하는 생활을 하였었다. 그러므로 로마제국 박해시대에도, 제2 이스라엘 선민들이 성만찬(聖晩餐)과 세례(洗禮)를 베풀고 성도 자신들을 생축(牲畜)의 제물로 드리며 안식일을 지키는 것으로써,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줌으로 인하여 침범한 사탄을 분립하는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 In the period of slavery in Egypt, the chosen people of the First Israel kept themselves pure by ‎circumcision,2 by making sacrifices3 and, as they left Egypt, by keeping the Sabbath.4 During the period of ‎persecu tion in the Roman Empire, the Christians as the Second Israel lived a life of purity by performing ‎the sacraments of baptism and holy communion, offering themselves as sacrifices, and keeping the ‎Sabbath. In both periods,‎ the chosen people had to follow this way of pure faith to separate Satan, who was constantly ‎assailing them due to the condition of previous mistakes by Abraham and the Jewish people.‎

애 급고역시대에 있어서, 400년의 고역이 끝난 후에, 모세는 3대기적(三代奇蹟)과 10재앙 (十災殃)의 권능으로 바로를 굴복시키고, 제1 이스라엘 선민을 인도하여 애급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향하였다. 이와 같이 로마제국 박해시대에 있어서도, 제2 이스라엘 선민들에 대한 4세기 동안의 박해가 끝난 후에, 예수님은 심령적인 기적과 권능으로써 많은 신도를 불러 일으키셨고, 더 나아가 콘스탄티누스대제를 감화시켜서 313년에 기독교를 공인하게 하셨으며, 392년 테오도시우스 1세에 이르러서는, 그처럼 극심한 박해를 하던 기독교를 국교(國敎)로 제정하게 하셨었다. 이리하여 기독교인들은 사탄세계에서 영적으로 가나안에 복귀하게 되었다. At the end of Israel’s slavery in Egypt, Moses brought the Pharaoh to his knees by the power of the three ‎signs and ten plagues. He then led the Israelites out of Egypt and set out for the land of Canaan. Likewise, ‎toward the end of the period of persecution in the Roman Empire, after Christians had drunk the cup of ‎persecution to the fill, Jesus increased the numbers of believers by moving their hearts with his power and ‎grace. By stirring the heart of Emperor Constantine, Jesus led him to recognize Christianity in 313 A.D. ‎Jesus inspired Theodosius I in 392 A.D. to establish Christianity as the state religion. Christians thus ‎restored Canaan spiritually inside the Roman Empire, the satanic world.‎

그 런데 율법(律法)에 의한 외적인 탕감조건(湯減條件)으로써 섭리하시던 구약시대(舊約時代)에 있어서는, 모세로 하여금 외적인 기사(奇事)와 권능으로써 바로를 굴복시키셨지만, 신약시대(新約時代)는 말씀에 의한 내적인 탕감조건으로 섭리하시는 시대이기 때문에, 심령적인 감화로써 역사(役事)하셨다.

애 급고역시대(埃及苦役時代)가 끝난 후, 모세는 시내산에서 십계명(十誡命)과 말씀을 받음으로써 구약성서의 중심을 세웠고, 석판(石板)과 성막(聖幕)과 법궤(法櫃)를 받듦으로써 제 1 이스라엘 선민들이 메시아를 맞기 위한 뜻을 세워 나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제2 이스라엘 선민들은 로마제국 박해시대가 끝난 후에, 구약시대의 십계명과 성막이상(聖幕理想)을 영적으로 이루기 위한 '말씀'으로서 사도(使徒)들의 기록을 모아 신약성서를 결정하고, 그 말씀을 중심한 교회를 이룩하여 가지고 재림주(再臨主)를 맞기 위한 터전을 넓혀 나오게 된 것이다. When the period of slavery in Egypt was over, Moses on Mt. Sinai received the Ten ‎Commandments and God’s Word revealed in the Law, which formed the core of the Old Testament ‎Scriptures. By setting up and honoring the tablets of stone, the Ark of the Covenant and the Tabernacle, ‎he paved the way for the Israelites to prepare for the coming of the Messiah. Likewise, at the conclusion ‎of the period of persecution in the Roman Empire, Christians gathered the writings which had been left ‎behind by the apostles and evangelists and established the canon of the New Testament. Based on these ‎writings, they sought to realize God’s ideals spiritually, ideals which had been enshrined in the Ten ‎Commandments and the Tabernacle in the Old Testament Age. They built up churches and expanded ‎their foundation to prepare for the Second Coming of Christ.‎ 예수님 이후에는 예수님과 성신(聖神)이 직접 성도들을 인도하셨기 때문에, 그 이전 섭리시대와 같이 어느 한 사람을 하늘 대신 전체적인 섭리의 중심인물(中心人物)로 세우지는 않으셨다.

제2절 사사시대와 교구장제기독교회시대 The Period of the Judges and the Period of Regional Church Leadership

모 세의 사명을 계승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선민을 인도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 옷니엘 사사(士師)를 위시한 12사사에 이어 삼손, 엘리, 사무엘에 이르기까지 도합 15사사가이스라엘을 지도하였던 400년 간을 사사시대(士師時代)라고 한다. 그들 사사는 다음 시대에 있어 분담된 예언자(預言者)와 제사장(祭司長)과 국왕(國王)의 사명을 겸임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유대교의 봉건사회(封建社會)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사시대를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던 신약시대(新約時代)의 교구장제기독교회시대(敎區長制基督敎會時代)에 있어서도, 역시 교구장들은 기독교 신도들을 영도(領導)하는 면에 있어 사사의 그것에 해당하는 직분을 띠고 있었다. Upon inheriting the mission of Moses, Joshua led the Israelites into the land of Canaan. For the next four ‎hundred years, fifteen judges governed the Israelite tribes: thirteen judges from Othniel to Samson ‎recorded in the Book of Judges, as well as Eli and Samuel. The judges filled the various responsibilities of ‎prophet, priest and king, which became separate offices in the later periods. Israel in this period was a ‎feudalistic society with no central political authority. In the New Testament Age, the period of regional ‎church leadership was set up to restore the period of the judges through parallel indemnity conditions. In ‎this period, regional church leaders—patriarchs, bishops and abbots—led Christian society. Like the ‎judges of the Old Testament Age, they had duties similar to those of prophet, priest and king. As in the ‎time of the judges, Christian society in this period was a feudalistic society under these local authorities.‎

예 수 이전의 시대에는 제1 이스라엘을 중심하고 영육(靈肉) 아울러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해 나아갔었기 때문에, 정치와 경제와 종교는 하나의 지도자 밑에 통솔되어 나아갔었다. 그러나 예수님 이후의 노정은 이미 조성된 '메시아를 위한 영적 기대' 위에서, 영적인만왕의 왕 되신 예수님을 중심하고 영적인 왕국을 건설해 나아가게 되었기 때문에, 신약시대에 있어서의 제2 이스라엘에 의한 기독교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 하나의 국토 없는 영적인 왕국인 것이다 in the age after Jesus, Christians were building a spiritual kingdom under the leadership of Jesus, ‎who stood upon the spiritual foundation for the Messiah. Their loyalty transcended national ‎barriers, for they were serving the resurrected Jesus as the King of Kings. Therefore, the spiritual ‎kingdom of Jesus was not confined to any one nation, but expanded to the far-flung corners of ‎the globe.‎

교 구장(敎區長)은 이러한 영적 왕국 건설에 있어서 사사(士師)와 같은 사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때로는 예언자도 되어야 했고, 때로는 제사장의 구실도 해야 했으며, 때로는 교구를 통치하는 국왕과 같은 사명도 해야 했던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봉건사회(基督敎封建社會)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The period of the judges began after the Israelites were liberated from slavery in Egypt ‎and the younger generation united solidly under the leadership of Joshua and Caleb to enter the ‎land of Canaan. They parceled out the territory among their clans and tribes. Settling in villages ‎united around the judges, the people consolidated into a chosen nation and established a simple ‎feudalistic society.

사 사시대에 있어서는, 사탄세계인 애급(埃及)에서 출발한 이스라엘 민족은 모두 광야에서, 쓰러지고, 거기에서 출생한 그들의 후손들만이 오직 남아진 여호수아와 갈렙의 인도함을 따라 가나안 복지(福地)에 들어간 후에, 각 지파에게 분배된 새 땅에서 사사를 중심하고 새로운 선민(選民)을 형성하여, 이스라엘 봉건사회의 기틀을 잡았던 것이다.

The period of the judges began after the Israelites were liberated from slavery in Egypt and the younger ‎generation united solidly under the leadership of Joshua and Caleb to enter the land of Canaan. They ‎parceled out the territory among their clans and tribes. Settling in villages united around the judges, the ‎people consolidated into a chosen nation and established a simple feudalistic society. ‎

마 찬가지로 교구장제기독교회시대(敎區長制基督敎會時代)에 있어서도, 기독교는 사탄세계인 로마제국에서 해방된 후, 4세기에 몽고족(蒙古族)의 일파인 훈족의 서침(西侵)에 의하여 서구로 이동된 게르만 민족에게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서구의 새 땅에서 게르만 민족을 새로운 선민으로 세워, 기독교봉건사회(基督敎封建社會)의 기틀을 형성하였던 것이다.

Likewise, the period of regional church leadership in the Christian era began after the liberation of ‎Christianity from the persecution of the Roman Empire, the satanic world. Christians spread the Gospel ‎to the Germanic peoples, many of whom had migrated to Western Europe in the fourth century to escape ‎the invading Huns. In their new land of Western Europe, God raised up the Germanic tribes as a new ‎chosen people and established an early form of feudal society, which later matured into the feudalism of ‎the Middle Ages.‎

애 급(埃及)을 떠난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복귀노정에서, '실체기대(實體基臺)'를 이루기 위하여 성막(聖幕)을 메시아의 상징체인 동시에 아벨 대신의 조건물로 세웠었다는 사실은, 이미 모세를 중심한 복귀섭리에서 상론(詳論)한 바이다.5 그러므로 사사시대(士師時代)에 있어서의 이스라엘 민족은 사사(士師)들의 지도를 따라 성막의 뜻만을 받들어야 할 것이었는데, 이들은 가나안 7족을 멸하지 않고 그대로 남겨둠으로써, 그들로부터 악습을 받아 우상(偶像)을 섬기게 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신앙에 큰 혼란을 가져왔었다. 마찬가지로 교구장제 기독교회시대에 있어서도 기독교 신도들은 교구장의 지도를 따라 메시아의 형상체인 동시에아벨 대신의 조건물인 교회의 뜻만을 받들어야 할것이었는데, 그들은 게르만 민족으로부터 잡도(雜道)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의 신앙에 큰 혼란을 가져오게 되었던 것이다. In the period of the judges, the Israelites should have exalted the Tabernacle and remained obedient to the ‎direction of the judges. However, instead of destroying the seven Canaanite tribes, the Israelites lived ‎among them and were influenced by their customs. They even took to worshipping their idols, thus ‎bringing great confusion to their faith. Likewise, in the period of regional church leadership, the Christians ‎were supposed to exalt the Church, which was the image of the Messiah, and follow the directions of its ‎bishops and monastic leaders. The Church was the object for the condition to determine who would have ‎the position of Abel. However, they became influenced by the religion and culture of the pagan Germanic ‎tribes, which brought great confusion to the Christian faith.‎

제3절 통일왕국시대와 기독왕국시대 The Period of the United Kingdom and the Period of the Christian Empire

통 일왕국시대(統一王國時代)에 들어서면서 사사가 제1 이스라엘을 영도하던 시대는 지나가고 하나님의 명령을 직접 받는 예언자(預言者)와, 성막이나 성전을 만드는 제사장(祭司長)과, 백성을 통치하는 국왕(國王)이 정립(鼎立)하여, 복귀섭리의 목적을 중심하고 각자의 지도적인 사명을 수행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를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기독왕국시대(基督王國時代)에 있어서도, 교구장이 제2 이스라엘을 영도해 나아가던 시대는 지나고, 예언자에 해당되는 수도원(修道院)과 제사장에 해당되는 교황(敎皇)과 백성을 통치하는 국왕이, 복귀섭리의 목적을 중심하고 제2 이스라엘을 지도해 나아가야만 했던 것이다.

When the period of the judges came to a close and the First Israel entered the period of the united ‎kingdom, the functions of the judge were apportioned to the offices of prophet, priest and king. The ‎prophets received instructions directly from God, the priests kept charge over the Tabernacle and later the ‎Temple, and the king governed the nation. Each carried on their distinct missions in guiding Israel to ‎accomplish the goal of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The purpose of the period of the Christian empire ‎was to restore the period of the united kingdom through parallel indemnity conditions. Thus, when the ‎period of regional church leadership came to a close, the missions of these leaders were apportioned to ‎the offices of monastic leaders corresponding to the prophets, the pope corresponding to the high priest, ‎and the emperor, who ruled the people. They were responsible to guide the Second Israel to accomplish ‎the goal of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당 시의 기독교는 예루살렘, 안디옥, 알렉산드리아, 콘스탄티노풀, 로마 등의 5대 교구(敎區)로 분립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우위에 있었던 로마교구장은 다른 교구를 통할(統轄)하는 위치에 있었으므로, 특히 그를 교황이라고 부르게 되었었다.

이 스라엘 민족이 애급(埃及)에서 해방되어 나오던 때의 모세의 성막이상(聖幕理想)은, 통일왕국시대(統一王國時代)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국왕을 중심한 성전이상으로 나타나 왕국을 이루었었는데, 이것은 장차 예수님이 실체성전으로 오셔서 만왕의 왕이 되어 왕국을 건설하실 것의 형상노정(形象路程)이었던 것이다(사 9 : 6). 그와 마찬가지로 기독왕국시대에 있어서도, 기독교 신도들이 로마제국에서 해방되었던 때, 성어거스틴에 의하여 그의 기독이상(基督理想)으로서 저술되었던 '신국론(神國論)'이 이 때에 와서 카알대제에 의하여 기독왕국(카알대제 때부터의 프랑크왕국)으로 나타났던 것인데, 이것은 장차 예수님이 만왕의 왕으로 재림하시어 왕국을 건설하실 것의 형상노정이었던 것이다. ‎In the period of the united kingdom, the kings established the kingdom of Israel around the Temple, ‎thereby manifesting the ideal of Moses’ Tabernacle which was first conceived at the time of the Exodus. ‎This was the image course for building the Kingdom of Heaven ruled by Jesus, which he would one day ‎come to establish as the King of Kings.6 Likewise, in the period of the Christian empire, Charlemagne’s ‎empire realized the ideal of the Christian state as set down in The City of God by St. Augustine—who lived ‎when the Christians had just been liberated from the oppression of the Roman Empire, a time parallel to ‎that of Moses. Once again, this was the image course for building the Kingdom of God, which Christ, as ‎the King of Kings, will one day return to establish.‎ 그러므로 이 시대에는 국왕과 교황이 하나님의 뜻을 중심하고 완전히 하나가 되어 기독이상을 실현함으로써, 예수님 이후 '메시아를 위한 영적 기대' 위에서 교황을 중심하고 이루어 나왔던 국토 없는 영적 왕국과, 국왕을중심한 실체적인 왕국이 기독이상을 중심하고 하나되어야 했던 것이다. 만일 그때 그렇게 되었더라면, 종교와 정치와 경제는 일치되어 '재림하실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이루게 되었을 것이었다. Accordingly, in this period, the emperor and the pope were to realize the ideal Christian state by ‎uniting wholeheartedly to follow the Will of God. The spiritual kingdom ruled by the pope, which had ‎been founded upon the spiritual foundation for the Messiah, and the temporal kingdom ruled by the ‎emperor should have united based on Christ’s teachings.‎

통 일왕국시대(統一王國時代)에 있어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중심인물은, 예언자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현해야 할 국왕(國王)이었다. 예언자(預言者)나 제사장(祭司長)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하여 나서기 때문에, 그 시대에 있어서 아벨의 입장에 서게 된다. 그러나 복귀섭리노정(復歸攝理路程)에 있어서, 그는 어디까지나 영계(靈界)를 대신하여 천사장(天使長)의 입장에서 실체세계를 복귀해야 되었기 때문에, 국왕이 설 수 있는 영적인 터전을 마련하고 왕을 축복(祝福)하여 세운 후에는, 그 앞에 가인의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아니 된다. 따라서 국왕은 예언자의 말씀에 의하여 국가를 통치해야 되고, 예언자는 하나의 국민의 입장에서 국왕에게 순종해야 된다. In the period of the united kingdom of Israel, the king was the central figure for restoring the ‎foundation of faith. He was responsible to carry out the Word of God, which was given through the ‎prophets. Before the king was anointed, the prophet and the high priest were to represent and teach the ‎Word of God, and thus they stood in the position of Abel. Their mission, as required by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was to restore the physical world from the position of the archangel, representing the spirit ‎world. However, after they laid the foundation upon which the king could stand, and anointed and blessed ‎him as the king, they were to take the role of Cain before him. The king was to rule his kingdom ‎according to the guidance of the prophets, and the prophets were to obey the king as his subjects and ‎counselors.‎ 그러므로 이 시대에 있어서의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중심인물은 국왕이었던것이다.

사 실상 아브라함으로부터 800년 되던 때에, 예언자 사무엘은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축복함으로써, 그를 제1 이스라엘 선민의 첫 왕으로 세웠던 것이다(사무 8 : 19∼22, 10 : 1∼24). About eight hundred years after Abraham’s descendants entered Egypt, by God’s ‎command the prophet ‎Samuel anointed Saul as the first king of Israel.7 사울왕이 사사시대(士師時代) 400년 기대 위에서 그의 재위 40년을 뜻맞게 세웠더라면, 그는 애급고역(埃及苦役) 400년과 모세의 바로궁중 40년을 탕감복귀(湯減復歸)한 입장에 설 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40일 사탄 분립기대' 위에서 '믿음의 기대'를 세울 수 있었을 것이었다. 따라서 사울왕이 이 기대 위에서 메시아의 형상체인 성전(聖殿)을 건축하고 그것을 받들었더라면, 그는 모세가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에 실패하지 않고 성공하여 성전을 건축하고 그것을 받든 것과 같은 입장에 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선민들이 사울왕을 중심한 그 '믿음의 기대' 위에서, 성전을 받들고 나아가는 이 국왕을 절대로 믿고 순종하였더라면, 그들은 '실체기대(實體基臺)'를 조성하여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이루었을 것이었다.

그 러나 사울왕은 선지자(先知者) 사무엘을 통하여 내리셨던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였기 때문에(삼상 15 : 1∼23),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였다. However, because King Saul disobeyed the commands of God given through the prophet ‎Samuel,8 he was in no position to build the Temple.‎ 이와 같이 성전을 건축하지 못한 사울왕은, 바로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에 실패한 모세와 같은 입장에 놓여졌었다. 그리하여 사울왕을 중심한 복귀섭리(復歸攝理)도 모세 때와 같이, 다윗왕 40년을 거쳐 솔로몬왕 40년에 이르러서야, 그 '믿음의기대'는 이루어져서 성전을 건축할 수 있게 되었었다. As was the case with Moses,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through King Saul was extended. Forty ‎years of King David’s reign and forty years of King Solomon’s reign would pass before the foundation of ‎faith was laid and the Temple built.‎ 마치 아브라함의 뜻이 이삭을 거쳐 야곱 때에 이루어진 것과 같이, 아브라함의 입장이기도 하였던 사울왕의 성전 건축의 뜻은, 다윗왕을 거쳐 솔로몬왕 때에 이르러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솔로몬왕이 음란(淫亂)으로 흘러서 '실체헌제(實體獻祭)'를 위한 아벨의 위치를 떠났기 때문에 '실체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따라서 통일왕국시대에 이루어져야 했던 '메시아를 위한 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Nevertheless, King Solomon left the position of Abel for the substantial offering when he fell into lust ‎with his many foreign wives, who turned him away from God.9 Hence, there was no way for Israel to ‎establish the foundation of substance. The foundation for the Messiah, which should have been laid in the ‎period of the united kingdom, was not realized.‎

기 독왕국시대(基督王國時代)에 있어서는 통일왕국시대(統一王國時代)의 모든 것을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해야 되었기 때문에, 이 시대의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는 중심인물은 수도원이나 교황의 기독이상(基督理想)을 실현시켜야 할 국왕이었다. 따라서 교황은 통일왕국시대에 있어서의 예언자의 뜻을 받드는 제사장의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그는 국왕이 기독이상을 실현해 나아갈 수 있는 영적인 터전을 마련하고, 그를 축복하여 왕으로 세운 후에는 하나의 국민의 입장에서 그에게 순종해야 되고, 한편 국왕은 교황의 이상(理想)을 받들어 국민을 통치해야 될 것이었다. In the period of the Christian empire, all the conditions pertaining to the united kingdom had to ‎be restored through parallel conditions of indemnity. Once again, the central figure to restore the ‎foundation of faith was the emperor. He was responsible to actualize the Christian ideals set forth by the ‎leading monastics and the pope. The pope, for his part, stood in a position comparable to the high priest ‎of Israel, who received God’s commands through the prophets. He was responsible to lay the spiritual ‎foundation upon which the emperor could realize the ideal Christian state. After crowning and blessing the ‎emperor, the pope was to obey him as one of his subjects in temporal matters. The emperor, in turn, was ‎to lift up and further the spiritual work of the papacy in his realm.‎ 사실상 이러한 섭리의 목적을 위하여 교황 레오 3세는 기원 800년에 카알대제를 축복하여 금관(金冠)을 씌움으로써 그를 제2 이스라엘 선민의 첫 왕으로 세웠던 것이다. Pope Leo III crowned Charlemagne and blessed him as the first emperor of Christendom in 800 A.D.‎

카 알대제는 사사시대(士師時代) 400년을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한 교구장제기독교회시대(敎區長制基督敎會時代) 400년 기대 위에 섰었기 때문에, 사울왕과 같이 '40일 사탄 분립기대' 위에 서게 되었었다. 따라서 카알대제가 이 기대 위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들어 기독이상(基督理想)을 실천해 나아가면, 이 시대의 '믿음의 기대'는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었다. Charlemagne stood upon the foundation of the four-hundred-year period of regional church leadership, which restored through indemnity, in the form of substantial parallels, the four-hundred-year period of the judges. Therefore, like King Saul, he stood upon the foundation of a dispensation of forty for the separation of Satan. By faithfully living according to the teachings of Jesus in his work to realize the Christian ideal of the state, he was to establish the foundation of faith. Indeed, when Charlemagne was crowned emperor, he achieved this foundation.

사 실상 카알대제는 교황에게 축복을 받고 왕위(王位)에 오름으로써, 이 기대를 이루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당시의 제2 이스라엘이 이러한 입장에 있는 국왕을 절대로 믿고 순종하였더라면 그 때에 '실체기대(實體基臺)'는 세워졌을 것이요, 따라서 '재림하실 메시아를 위한 기대'도 이루어졌을 것이었다. 이와 같이 되었어야만 '메시아를 위한 영적 기대' 위에서 교황을 중심하고 세워진 영적인 왕국과, 국왕을 중심한 실체적인 왕국이 하나 되어, 그 터전 위에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메시아왕국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었다. Had the Second Israel absolutely believed in and followed Charlemagne, the foundation of substance would have been laid, and thereby the foundation for the Messiah would have been established. In other words, the spiritual kingdom led by the pope and the earthly kingdom led by the emperor were to fully unite upon the existing spiritual foundation for the Messiah. Christ would then have returned upon this solid ground and built his Kingdom. 그러나 국왕이 하나님의뜻을 받들지 못함으로써 '실체헌제(實體獻祭)'를 하기 위한 아벨의 위치를 떠났었기 때문에, '실체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따라서 '재림하실 메시아를 위한 기대'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However, the emperor did not remain obedient to God’s Will and left the position of Abel for the ‎substantial offering. Neither the foundation of substance nor the foundation for the Second Advent of ‎the Messiah was established.‎

제4절 남북왕조분립시대와 동서왕조분립시대 The Period of the Divided Kingdoms of North and South and the Period of the Divided Kingdoms of East and West

사 울왕에 의하여 시작되었던 통일왕국시대(統一王國時代)는, 다윗왕을 거쳐 솔로몬왕에 이르러 그가 왕비들이 섬기는 이방인(異邦人)의 신을 섬겼으므로 (왕상 11 : 5∼9), 3대 만에 가인의 입장인 10지파를 중심한 북조(北朝) 이스라엘과, 아벨의 입장인 2지파를 중심한 남조(南朝) 유대로 분립되었었다. 그리하여 남북왕조분립시대(南北王朝分立時代)는 오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카알대제에 의하여 시작되었던 기독왕국(基督王國)도, 그 3대에 이르러 손자들 3인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기 때문에, 이 왕국은 동·서프랑크와 이태리로 3분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동프랑크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실제에 있어서는 동·서프랑크왕국으로 양분된 셈이었다. Because King Solomon was led by his wives and concubines to worship idols, the united kingdom of ‎Israel was divided upon his death, having lasted only three generations.10 The kingdom of Israel in the ‎north, which was founded by ten of the twelve tribes, was in the position of Cain, while the kingdom of ‎Judah in the south, which was founded by the two remaining tribes, was in the position of Abel. This was ‎how the period of the divided kingdoms of north and south began. The Christian empire also began to ‎divide in the third generation. Charlemagne’s grandsons partitioned it into three kingdoms: the East ‎Franks, the West Franks and Italy. The descendants of Charlemagne were in bitter and constant conflict ‎with each other. The remnants of the Christian empire soon coalesced into two kingdoms, with Italy ‎reverting to the rule of the East Franks. The kingdom of the East Franks flourished greatly under Otto I ‎and came to be called the Holy Roman Empire.‎ 한편 동프랑크는 오토 1세로 말미암아 크게 융흥(隆興)되어 신성로마제국이라 부르게 되었고, 로마황제의 이름으로 서구(西歐)를 통치하여 정교(政敎) 2권을 확보하려 하였었다. 이렇게 하여 동프랑크는 서프랑크에 대하여 아벨의 입장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The Holy Roman Empire stood in the position of Abel in relation to France, as the kingdom of the West ‎Franks came to be called.‎

솔 로몬조(朝)의 망명객이었던 여로보암을 중심한 북조 이스라엘은 260년 간에 19왕이 경질되었고, 그들은 서로 살육하여 왕실(王室)이 9차나 변혁되었으며, 열왕(列王) 중에 선한 왕이 하나도 없었다. 따라서 남조 유대로부터 보내온 선지자 엘리야를 통하여 갈멜산의 제단(祭壇)에 불을 내리심으로써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850명을 멸하셨으며(왕상 18 : 19∼40), 그 외에도 엘리사, 요나, 호세아, 아모스 같은 선지자들을 보내시어 목숨을 걸고 전도(傳道)하게 하셨다. 그러나 북조 이스라엘왕국은 여전히 사신(邪神)을 숭배하며 회개하지 않았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앗수르에 부쳐 멸망케 하심으로써 영원히 선민(選民)의 자격을 잃게 하셨던 것이다(왕하 17 : 17∼23). The northern kingdom of Israel was founded by Jeroboam, who had lived in exile in the days of ‎King Solomon. It was ruled by nineteen kings over some 210 years. Through repeated assassinations, its ‎shortlived royal families changed nine times; not one king was righteous in the sight of God. Nevertheless, ‎God sent the prophet Elijah, who prevailed in the contest with 850 prophets of Baal and Asherah on Mt. ‎Carmel when God sent down fire upon the altar.11 Other prophets, including Elisha, Jonah, Hosea and ‎Amos, spread the Word of God at the risk of their lives. Yet since the northern kingdom continued to ‎worship foreign gods and did not repent, God had the Assyrians destroy them and took away their ‎qualification as the chosen people forever.12

한 편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을 중심한 남조 유대는 다윗으로부터 시드기야에 이르기까지 정통일계(正統一系)였으며, 394년 간에 걸친 20인의 왕 중에 선군(善君)이 많이 있었으나, 요시아왕 이후에는 악한 왕들이 속출하여 북조의 영향을 받음으로써 우상숭배(偶像崇拜)에 빠지게 되어, 이들도 역시 바빌로니아에게 포로(捕虜)가 되고 말았었다. The southern kingdom of Judah was established by Solomon’s son, Rehoboam. Its royal house continued ‎in one dynastic line from David to Zedekiah, producing many righteous kings out of the twenty who ruled ‎the kingdom for its nearly four hundred years of existence. Nevertheless, a succession of evil kings, ‎combined with influence from the northern kingdom, led to much idolatry and corruption. Consequently, ‎the people of the southern kingdom were taken into exile in Babylon.‎

이 와 같이 남북왕조분립시대(南北王朝分立時代)에 있어서 이스라엘 민족이 성전이상(聖殿理想)에 배치(背馳)되는 입장에 서게 될 때마다, 하나님은 계속 4대선지(四大先知)와 12소선지(十二小先知)를 보내시어 그들을 권고하여 내적 쇄신운동(刷新運動)을 일으키셨다. 그러나 그들은 선지자들의 권고에도 회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애급, 갈대아, 시리아, 앗시리아, 바빌로니아 등 이방인들에게 부쳐 외적 확청(廓淸)의 섭리를 하셨던 것이다. In the period of the divided kingdoms of north and south, whenever the Israelites violated their covenant ‎with God, straying from the ideal of the Temple, God sent many prophets — such as Elijah, Isaiah and ‎Jeremiah — to admonish them and move them to repentance and internal reform. However, because the ‎kings and the people did not heed the warnings of the prophets and did not repent, God chastised them ‎externally by sending gentile nations such as Syria, Assyria and Babylon to attack them.‎

이 시대를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동서왕조분립시대(東西王朝分立時代)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교황청이 부패하매 토마스 아퀴나스, 성프란체스코 등 수도원(修道院)의 인물들이 그들을 권고하여 내적인 쇄신운동을 일으켰었다. 그러나 그들도 회개하지 않고 더욱 타락과 부패에 흘렀으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이방인들에게 부쳐 외적인 확청의 섭리를 하셨던 것이니, 이것이 곧 십자군전쟁(十字軍戰爭)이었다. During the parallel period of the divided kingdoms of east and west, the papacy was corrupt. God sent ‎prominent monks such as St. Thomas Aquinas and St. Francis of Assisi to admonish the papacy and ‎promote internal reform in the Church. Since the papacy and the Church did not repent, but sank further ‎into corruption and immorality, God chastised them externally by letting their people fight the Muslims. ‎This was the providential reason behind the Crusades.‎

예 루살렘의 성지(聖地)가 칼리프제국에 속해 있었을 때에는 기독교의 순례자(巡禮者)들이 후대(厚待)를 받았었으나, 칼리프제국이 망하고 셀주크 터어키가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 그들은 순례자들을 학대하였으므로, 이에 분개한 역대 교황(敎皇)들은 이 성지를 회복하려고 십자군전쟁을 일으켰던 것이다. 1096년에 일어난 십자군(十字軍)은 그 후 약 200년 간에 걸쳐 7회의 원정(遠征)을 하였으나 그들은 끝내 패전을 거듭하였다. the popes raised the Crusades to recover the Holy Land. There were eight Crusades, beginning in 1095 and continuing sporadically for about two hundred years. Despite some initial success, the Crusaders were defeated again and again.

남 북왕조분립시대에 있어서, 북조 이스라엘왕국과 남조 유대왕국의 백성들이 모두 이방인(異邦人)에게 포로가 되어 감으로써, 이스라엘의 군주사회는 붕괴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동서왕조분립시대(東西王朝分立時代)에 있어서도, 십자군이 이교도(異敎徒)에게 패하여 교황권이 그 권위와 신망을 완전히 잃게 되자, 국민정신은 그 중심을 잃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봉건사회(封建社會)를 유지하던 영주(領主)들과 기사(騎士)들이 많이 전사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정치적인 기반을 잃고 말았으며, 또 거듭되는 패전으로 인하여 막대한 전비(戰費)를 소모하게 되어, 그들은 여지없이 경제적인 곤궁에 빠지고 말았다. 여기에서 기독교군주사회(基督敎君主社會)는 드디어 붕괴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The period of the divided kingdoms of north and south came to an end when gentile nations took the people of Israel and Judah into exile. They put an end to the monarchy in Israel. Likewise, at the close of the period of the divided kingdoms of east and west, the papacy had completely lost its prestige and credibility after the repeated defeats of the Crusades. Christianity thus lost its center of spiritual sovereignty. Moreover, since the lords and knights who had maintained feudal society were decimated by the Crusades, feudal society lost its political power and vigor. Since the papacy and the feudal lords had spent enormous funds to pursue these unsuccessful wars, they were left impoverished. Monarchic Christianity began to erode.

제5절 유대민족 포로 및 귀환시대와 교황 포로 및 귀환시대 The Period of Israel's Exile and Return and the Period of the Papal Exile and Return

유 대민족이 불신으로 돌아가서 회개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성전이상(聖殿理想)을 복귀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By falling into faithlessness without repentance, the people of Israel failed to realize the ideal of God’s nation founded upon the Temple. 하나님은 다시 이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마치 아브라함의 헌제(獻祭) 실수를 탕감복귀케 하시려고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사탄세계인 애급(埃及)으로 들어가서 고역(苦役)을 당하게 하셨던 것처럼,유대민족도 사탄세계인 바빌론으로 포로 되어 가서 고역을 당하게 하셨던 것이다. To make another attempt at fulfilling this Will, God had the people suffer hardships as exiles in Babylon. This was similar to when God had the Israelites suffer as slaves in Egypt to restore through indemnity Abraham’s mistake in the symbolic offering.

이 와 마찬가지로 이미 위에서 논한 바와 같이, 하나님이 기독왕국시대(基督王國時代)를 세우신 것은 교황(敎皇)과 국왕(國王)을 중심하고 '재림하실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하여, 그 기대 위에 메시아로 재림(再臨)하시는 '만왕의 왕'에게 그 나라와 왕위(王位)를 인계 해 드림으로써, 메시아 왕국을 건설하기 위함이었다(사 9 : 6, 눅 1 : 33).13 In the period of the Christian empire, God worked through the pope and the emperor to establish a kingdom prepared for Christ at his Second Coming. God’s intention was that ultimately they would bequeath the empire and the throne to the Messiah when he would come as the King of Kings and build God’s kingdom13 upon that foundation. 그러나 국왕과 그를 '실체기대(實體基臺)'의 중심인물로 세우기 위한 영적인 기대를 조성해야 할 교황들이 부패한 가운데서 끝내 회개하지 않았으므로, Yet the emperors and popes became corrupt and did not repent. 그들은 '재림하실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하지 못하였다. The popes did not lay the spiritual foundation upon which the emperors could stand as the central figures for the foundation of substance. 이에 하나님께서는 이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새로운 섭리를 하시기 위하여, 교황으로 하여금 포로가 되어 고역을 당하게 하셨던 것이다.  Therefore, the foundation for the Second Advent of Christ was not established. To begin a new dispensation to restore this foundation, God allowed the popes to be taken into exile and suffer captivity.

전 에 여호야김왕을 비롯하여 다니엘과 기타 왕족들, 그리고 정부 대신(大臣)들과 관리(官吏)와 공장(工匠) 등 많은 유대인들이 바빌로니아의 왕 느부갓네살에게 포로로 잡혀 갔던 70년 기간이 있었고(렘 39 : 1∼10, 왕하 24, 25장), 페르시아가 바빌로니아를 멸하고, 고레스왕이 조서(詔書)를 내려 그들을 해방시킨 후, 3차에 걸쳐 고향으로 귀환하여 선지자(先知者) 말라기를 중심하고 메시아를 위한 준비를 하는 민족으로 세워질 때까지의 140년 기간이 있었다. In the earlier parallel period, nearly seventy years elapsed from the time King Nebuchadnezzar of Babylon took into captivity King Jehoiachin and his royal family, as well as prophets including Daniel and Ezekiel, priests, officials, craftsmen and many other Israelites, until the fall of Babylon and their liberation by the royal decree of King Cyrus.14 It then took another 140 years for the exiles to return to their homeland in three waves, until they fully reformed themselves as a nation united around the Will of God as proclaimed in the messianic prophecies of Malachi. Henceforth, they began to prepare for the coming of the Messiah.이 시대를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교황 포로 및 귀환시대에 있어서도, 이와 같은 노정을 걸어야 했었다. In the period of papal exile and return, which was to restore this period through indemnity in the form of substantial parallels,
Western Christianity had to walk a similar course.

교 황(敎皇)과 승려(僧侶)들은 그들의 부도덕(不道德)으로 말미암아 점차로 국민들의 신망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그 위에 십자군전쟁(十字軍戰爭)에 패함으로 인하여 교황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게 되었었다. 한편 십자군전쟁 이후 봉건제도(封建制度)가 몰락된 근대국가가 성립되자 점차로 왕권(王權)이 신장되면서 교황과 국왕과의 충돌은 격화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는 불왕 필립 4세와 충돌되어, 일시 그에게 금고(禁錮)를 당하는 데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그후 1대를 지나서 1305년에 교황으로 피선된 클레멘스 5세는 1309년에 교황청(敎皇廳)을 로마로부터 남불의 아비뇽으로 옮기었고, 거기에서 70년 간 역대의 교황들은 불왕의 구속을 받으면서 포로와 같은 생활을 하게 되었었다. 그 후 교황 그레고리우스 11세는 1377년 로마로 귀환하였다. The popes and priests, sunk in immorality, gradually lost the confidence of the people. The authority of the papacy sank even lower due to the repeated defeats of the Crusades. The end of the Crusades saw the gradual collapse of the feudal system in Europe and the emergence of modern nation-states. As the power of secular monarchies grew, the conflict between the popes and the kings escalated. In one such conflict, King Philip IV, “the Fair,” of France imprisoned Pope Boniface VIII for a time. In 1309, Philip forced Pope Clement V to move the papacy from Rome to Avignon in southern France. For seventy years, successive popes lived there subject to the kings of France, until 1377 when Pope Gregory XI returned the papal residence to Rome.


그 가 서거(逝去)한 후에 추기경(樞機卿)들은 이태리의 바리의 감독(監督) 울바누스 6세를 교황으로 선출하였다. 그러나 불인(佛人)이 다수였던 추기경들은 오래지 않아 울바누스를 배척하고, 따로이 클레멘스 7세를 교황으로 선출하여 남불 아비뇽에 또 하나의 교황청을 세우게 되었었다. 이 분리는 다음 세기에 이르러 개혁회의(改革會議)에서 해결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즉 1409년에 추기경들은 이탈리아의 피사에서 회의를 열어 분리되어 온 두 교황을 모두 폐위(廢位)시키고 알렉산더 5세를 정당한 교황으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폐위된 두 교황이 이에 불복(不服)함으로써 일시 3인의 교황이 정립(鼎立)하게 되었었다. 그 후 다시 감독과 대감독(大監督) 외에, 신학자(神學者), 왕후(王侯), 사절(使節) 등 많은 참석자로써 콘스탄트대회를 개최하여, 3인의 교황을 일제히 폐위시키고 다시 마루티누스 5세를 교황으로 선출하였다.


이 와 같이 하여 교황 선출의 권한을 추기경들로부터 빼앗아, 로마교회의 지상권(至上權)을 주장하던 이 회의에로 옮겼다(1418년). 이 회의는 그 후 스위스의 바젤에서 로마교회 기구를 입헌군주체(立憲君主體)로 할 목적으로 열렸었다. 그러나 교황은 회중(會衆)들의 이러한 주관성을 좋지 않게 생각하고, 이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유회(流會)시키려고까지 하였다. 그래도 교황당(敎皇黨) 이외의 의원들은 개회를 강행하였으나, 1449년에 저절로 해산되고 말았다. 이와 같이 로마교회 내에 입헌군주체를 수립하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1309년 이래 잃어버렸던 교황전정(敎皇專政)의 기능을 회복하였다.


14 세기의 제회의(諸會議)의 지도자들은 평신도들을 대표로 세우고, 이 회의에 최고의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부패한 교황과 승려들을 제거하려 하였었다. 그러나 교황권(敎皇權)은 그들의 유수(幽囚) 전과 같은 입장으로 돌아갔을 뿐 아니라, 위클리프나 후스 같은 개혁정신(改革精神)을 가진 지도자들을 극형에 처하게 되었으므로, 이때부터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운동(宗敎改革運動)은 싹트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 와 같이 교황이 1309년으로부터 70년 간 남불(南佛)의 아비뇽에 유수되었다가, 3교황으로 분립되었던 노정을 거쳐 다시 로마교회를 중심한 교황전정(敎皇專政)으로 복귀된 후, 1517년에 루터를 중심하고 종교개혁(宗敎改革)이 일어날 때까지의 약 210년 간은, 유대민족이 바빌론에 70년 간 포로 되었다가 3차에 걸쳐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말라기를 중심하고 정교(政敎)의 쇄신(刷新)을 일으킬 때까지의 210년 간을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湯減復歸)하는 기간이었던 것이다. This period of approximately 210 years ran from 1309, with the papacy’s seventy years of exile in Avignon, through the Great Schism, the conciliar movement and the restoration of papal authority in the Roman church, to the eve of the Protestant Reformation spearheaded by Martin Luther in 1517. Its purpose was to restore through indemnity, in the form of substantial parallels, the 210-year period of Israel’s exile and return—from Israel’s seventy years of exile in Babylon through the stages of the returning to Israel and the rebuilding of the Temple, until the reform of politics and religion under the leadership of Ezra, Nehemiah and the prophet Malachi.


제6절 메시아 강림준비시대와 메시아 재강림준비시대 The Period of Preparation for the Advent of the Messiah and the Period of Preparation for the Second Advent of the Messiah


이 스라엘 민족은 바빌론 포로(捕虜)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후, 메시아 강림준비시대(降臨準備時代) 400년을 지나서야 예수님을 맞았다. 그러므로 이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하여는, 기독교 신도들도 교황이 아비뇽의 포로생활에서 로마로 돌아온 후, 메시아 재강림준비시대(再降臨準備時代) 400년을 지나서야 재림 예수님을 맞을 수 있는 것이다. Following the period of Israel’s exile and return, another four hundred years elapsed before Jesus came. This was the period of preparation for the advent of the Messiah. Likewise, Christianity is to meet Christ at his Second Advent only after passing through four hundred years of the period of preparation for the Second Advent of the Messiah, which has followed the period of papal exile and return. It should restore through indemnity in the form of substantial parallels the period of preparation for the advent of the Messiah.

40 일 사탄 분립기간(分立期間)으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섭리가 계속되는 사탄의 침범으로 인하여 연장을 거듭하여 내려왔던 During the four thousand years of God’s providence of restoration from Adam to Jesus, vertical indemnity conditions had accumulated due to Satan’s repeated defilement of dispensations to restore the foundation
of faith through periods of forty for the separation of Satan. 아담 이후 4천년 복귀섭리역사(復歸攝理歷史)의 종적인 탕감조건을 이 역사의 최종적인 한 시대에 횡적으로 탕감복귀(湯減復歸)하기 위하여 메시아 강림준비시대(降臨準備時代)가 있었다. 그러므로 이 시대를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기 위하여는, 아담으로부터 6천년 복귀섭리역사의 종적인 탕감조건들을, 이 역사의 최종적인 한 시대에 횡적으로 탕감복귀하기 위한 메시아 재강림준비시대(再降臨準備時代)가 없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The period of preparation for the advent of the Messiah was intended to be the final period of providential history in which all these conditions would be horizontally restored through indemnity. Likewise, the period of preparation for the Second Advent of the Messiah is intended to be the final period of providential history, when all the vertical indemnity conditions which have accumulated during the six-thousand-year history of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since Adam’s day are horizontally restored.

바 빌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민족은느부갓네살왕에 의하여 파괴되었던 성전(聖殿)을 신축하고, 또 말라기 선지(先知)의 영도에 의하여 사신(邪神)을 숭배하던 과거의 죄를 회개하면서, 율법(律法)을 공부하고 신앙의 쇄신운동을 일으킴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복귀해 나왔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황이 로마로 귀환한 후의 중세 기독교인들은, 루터 등을 중심하고 종교의 개혁운동을 일으키어, 중세 암흑시대의 암운(暗雲)을 뚫고 새로운 복음(福音)의 빛을 따라 신앙의 새로운 길을 개척함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복귀해 나왔던 것이다. Upon returning from the Babylonian exile, the Israelites established the foundation of faith by repenting of their past sin of idolatry, rebuilding the Temple15 which had been destroyed by King Nebuchadnezzar, and reforming their faith based on the Mosaic Law under the guidance of Ezra the scribe.16 They then began to prepare for the coming of the Messiah according to the word of the prophet Malachi. Likewise, after the papacy’s return to Rome, medieval Christians established the foundation of faith by seeking to reform the Roman church; these efforts culminated in the Protestant Reformation led by Martin Luther. This movement pierced the gloom of medieval Europe with the light of the Gospel and pioneered new paths of faith.

야 곱이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귀환하여 애급(埃及)으로 들어갈 때까지의 약 40년 준비기간(準備期間)을 형상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가 메시아 강림준비시대였다. 그리고 이 시대를 다시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가 메시아 재강림준비시대인 것이다. 따라서 이 시대의 모든 기독교 신도들은, 마치 애급에서 요셉을 만날 때까지의 야곱가정이나, 또 예수님을 맞을 때까지의 이스라엘 민족과 같이, 갖은 파란과 고난의 길을 걷지 않으면 아니 된다.

복 귀섭리시대(復歸攝理時代)는 율법(律法)과 제사(祭祀) 등의 외적인 조건으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세워 내려오던 시대였으므로, 메시아 강림준비시대(降臨準備時代)에 있어서의 제1 이스라엘은, 폐르시아, 희랍(希臘), 애급(埃及), 시리아, 로마 등의 이방(異邦)에 속방되어 외적인 고난의 길을 밟았던 것이다. 그러나 복귀섭리연장시대(復歸攝理延長時代)는 예수님의 말씀을 중심한 기도와 신앙의 내적인 조건으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세워 나온 시대이므로, 메시아 재강림준비시대(再降臨準備時代)에 있어서의 제2 이스라엘은 내적인 수난의 길을 걷지 않으면 아니 된다. Specifically, in the Age of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people were justified before God by such external conditions as keeping the Mosaic Law and offering sacrifices. Therefore, during the period of preparation for the advent of the Messiah, the First Israel had to suffer external hardships at the hands of the gentile nations of Persia, Greece, Egypt, Syria and Rome. During the Age of the Prolongation of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Christians have been justified before God by internal conditions of prayer and faith according to the teachings of Jesus. Hence, in the period of preparation for the Second Advent of the Messiah, the Second Israel has had to walk a path of internal tribulations. 곧 이 시대에는 문예부흥(文藝復興)의 주도이념인 인문주의(人文主義)와 그에 따라 일어나는 계몽사조(啓蒙思潮), 그리고 종교개혁(宗敎改革)에 따라 부르짖게 된 신앙의 자유 등에 의한 영향으로 말미암아, 종교와 사상에 일대 혼란을 일으키게 되어 기독교 신도들은 말할 수 없는 내적인 시련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The ideologies of Renaissance humanism and the Enlightenment, as well as the call for religious freedom which arose from the Reformation, have created a profusion of philosophies and theologies, causing great confusion
in the Christian faith and turmoil in people’s spiritual lives.

이 와 같이 예수님의 강림(降臨)을 위한 400년 준비시대를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湯減復歸)하기 위하여, 그의 재림(再臨)을 위한 400년 준비기간이 있게 된 것인데, 우리는 여기에서 메시아를 맞기 위한 준비기간인 이 두 시대에 대해서, 각각 그 시대적인 배경과 환경이 어떻게 조성되었던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초 림(初臨) 때에는 하나님이 그의 선민(選民)을 위하여, 메시아가 강림하시기 430년 전에 선지자(先知者) 말라기를 보내시어, 메시아가 강림하실 것을 예언케 하시고, 한편으로는 유대교를 쇄신하여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선민으로서의 준비를 갖추도록 하셨다. In preparation for the First Coming of Christ, God sent the prophet Malachi to the chosen people 430 years beforehand to arouse in them a strong messianic expectation. At the same time, God encouraged the Jews to reform their religion and deepen their faith to make the internal preparations necessary to receive the Messiah. 한편 이방인들간에 있어서는, 이와 거의 동시대에 인도의 석가모니(B.C. 565∼485)로 하여금 인도교를 발전시켜 불도(佛道)의 새로운 터전을 개척케 하셨고, 희랍에서는 소크라테스(B.C. 470∼399)로 하여금 헬라문화시대를 개척케 하셨으며, 또 동양에서는 공자(B.C. 552∼479)로 하여금 유교(儒敎)로써 인륜도덕(人倫道德)을 세우게 하시는 등, 각각 그 지방과 그 민족에 적응되는 문화와 종교를 세우시어, 장차 오실 메시아를 맞이하는데 필요한 심령적인 준비를 하게 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와 같이 준비된 터 위에 오셔서, 기독교를 중심하고 유대교(Hebraism)를 수습하고 헬라문화(Hellenism)및 불교(Buddhism) 유교(Confucianism)등의 종교를 포섭함으로써, 그 종교와 문화의 전역(全域)을 하나의 기독교문화권 내(基督敎文化圈內)에 통합하려 하셨던 것이다. Meanwhile, among the world’s peoples, God founded religions suited to their regions and cultures by which they could make the necessary internal preparations to receive the Messiah. In India, God established Buddhism through Gautama Buddha (565-485 B.C.) as a new development out of Hinduism. In Greece, God inspired Socrates (470-399 B.C.) and opened the brilliant age of classical Greek civilization. In the Far East, God raised up Confucius (552-479 B.C.), whose teachings of Confucianism established the standard of human ethics. Jesus was to come upon this worldwide foundation of preparation, and through his teachings he was to bring together Judaism, Hellenism, Buddhism and Confucianism. He was to unify all religions and civilizations into one worldwide civilization founded upon the Christian Gospel.

예 수님의 초림(初臨)을 앞두고, 메시아 강림에 대한 준비를 위하여 섭리하셨던 그 환경 조성의 시대를,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오게 된 시대가 문예부흥시대(文藝復興時代)였다. 그러므로 문예부흥시대는 메시아 재강림(再降臨)을 위한 그 시대적인 배경과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시대였던 것이다. Since the Renaissance, God has been creating the religious, political and economic environment conducive to the work of Christ at his Second Coming. This has been the age to restore through indemnity, in the form of substantial parallels, the earlier period when God had set up the worldwide environment to prepare for the coming of Jesus.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보는 바와 같은 정치, 경제, 문화, 과학 등 모든 면에 걸친 비약적인 발전은, 모두 이 문예부흥시대로부터 급격히 시작되어, 재림(再臨) 예수님을 맞을 수 있는 오늘날의 시대적인 배경과 환경을 성숙시켜 나온 것이다. 즉 예수님 때에는, 로마제국의 발흥(勃興)으로 인하여 지중해(地中海)를 중심하고 형성되었던 광대한 정치적 판도와, 사통팔달(四通八達)한 교통의 편과, 헬라어를 중심하고 형성되었던 광범한 문화적 판도 등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중심한 이스라엘, 이스라엘을 중심한 로마, 로마를 중심한 세계에로 메시아의 사상이 급속히 확대되어 갈 수 있는 평면적인 기대(基臺)가 이미 조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Beginning with the Renaissance, progress in virtually every field of human endeavor, including politics, economy, culture and science, has increased at a rapid rate. Today, these fields have reached their zenith and have created a global environment conducive to the work of Christ at his Second Coming. In Jesus’ day, the Roman Empire ruled the vast domains around the Mediterranean Sea, integrated by an advanced and extensive transportation system reaching out in all directions. This was the center of a vast Hellenistic civilization founded on the Greek language. Thus, all the necessary preparations had been made for a swift transmission of the teachings of the Messiah from Israel, where Jesus lived, to Rome and the world.

마 찬가지로 그의 재림(再臨) 때인 오늘날에 있어서도, 열강(列强)들의 융흥으로 말미암아 자유를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民主主義)의 정치적인 판도는 전세계에 펼쳐졌고, 교통 및 통신의 비약적인 발달로 인하여 동서(東西)의 거리는 극도로 단축되었으며, 언어와 문화는 세계적으로 교류되어, 메시아 재강림을 위한 사조(思潮)가 자유롭고도 신속하게 전인류의 가슴 속에 흘러 들어갈 수 있도록 이미 그 평면적인 판도가 완전히 조성되어 있는 것이다. Similarly, in the present era of the Second Advent, the influence of the Western powers has expanded the democratic political sphere throughout the world. The rapid progress of transportation and communication has greatly bridged the gap between East and West, and the extensive contact among languages and cultures has brought the world much closer together. These developments characterize an environment in which the teachings of the returning Christ can freely and swiftly be conveyed to the hearts of all humankind. 따라서 메시아가 재림하시면, 그의 진리와 사상을 급속도로 전파하여 단시일 내에 세계화시키는데, 이것이 그대로 적호(適好)한 평면적 기대가 되어지리라는 것은 두말 할 것도 없다. This will enable his teachings to bring rapid and profound changes all over the globe.

제7절 복귀섭리로 본 역사 발전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and the Progress of History

창 조원리(創造原理)에서 이미 논한 바와 같이, 지상천국(地上天國)은 완성한 사람하나의 모양과 같은 세계인 것이다. 따라서 타락된 세계는 타락한 사람 하나의 모양을 닮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타락한 사람 하나의 생활을 살펴봄으로써 인류죄악사(人類罪惡史)의 전체적인 움직임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The Kingdom of Heaven on earth is a society whose structure is formed in the image of a perfect person.17 Likewise, fallen society may be regarded as formed in the likeness of a fallen person. We can better understand the history of societies built by sinful humanity by examining the inner life of a fallen person.

타 락(墮落)한 인간에게는 선을 지향하는 본심(本心)과 이 본심의 명령을 배반하고 악을 지향하는 사심(邪心)이 있어서, 이 두 마음이 항상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본심의 명령을 따르는 선행(善行)과 사심의 명령을 따르는 악행(惡行)이, 우리들의 한 몸에서 상충되고 있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A fallen person possesses both an original mind, which prompts him to pursue goodness, and an evil mind, which fills him with evil desires and rebels against the promptings of the original mind. Undeniably, the two minds are constantly at war with each other, inclining us toward shifting and conflicting behaviors. 이와 같이 그 자체 내에서 투쟁을 일으키고 있는 개체들이 횡적(橫的)으로 얽혀서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사회이기 때문에 거기에도 역시 투쟁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이와 같이 투쟁으로 얽히어진 사회생활이, 시간의 흐름을 따라 종적(縱的)으로 변전(變轉)하여 내려온 것이 바로 인류역사이므로, 이 역사는 필연적으로 투쟁과 전쟁의 역사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Since human society is composed of individuals who are constantly at war within themselves, interactions among them cannot help but be full of discord and conflict. Human history has consisted of people’s conflict-ridden social relationships constantly changing with the course of time. Hence, it has necessarily unfolded in strife and warfare.

그 러나 인간은 본심(本心)과 사심(邪心)의 집요한 싸움 가운데서, 악을 물리치고 선을 따르려고 끊임없이 노력을 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행동도 점차 악행을 버리고 선을 행해 나아가는 방향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타락된 인간에게도 이와 같이 선을 지향하는 본심의 작용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복귀섭리(復歸攝理)에 대응하여 선의 목적을 이루어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Because of the activity of the original mind within himself, even a fallen person can respond to God’s providence of restoration and join in furthering the goal of goodness.

따 라서 이러한 인간들에 의하여 엮어져 내려온 역사는, 선악(善惡)이 교착(交錯)되는 와중에서도 악을 물리치고 선을 지향해 내려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역사가 지향하는 종국적인 세계는 바로 선의 목적이 이루어진 천국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Progress in history thus originates with individuals who, even amidst the vortex of good and evil, make determined efforts to reject evil and promote goodness. Therefore, the world toward which history is progressing is the Kingdom of Heaven, where the goal of goodness will be realized. 그렇기 때문에 투쟁이나 전쟁은 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선과 악을 분립해 나온 하나의 과정적인 현상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We must understand that conflicts and wars are interim phenomena to separate good from evil in the pursuit of this ultimate goal. 그러므로 싸움의 결과가 일시 악의 승리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그 악의 결과로 인하여, 역사는 보다 더 큰 선의 목적을 이루어 나아가는 섭리노정(攝理路程)으로 바뀌어지게 되는 것이다. Even though evil may triumph at times, God will use it to steer history toward the fulfillment of a greater good. 이러한 견지에서, 우리는 인류역사가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의하여 부단히 선과 악의 분립역사(分立役事)를 되풀이하면서, 선을 지향하고 발전하여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In this respect, we can recognize that the progress of history toward goodness is driven by a process of constantly dividing good from evil according to God’s providence of restoration.

그 런데 인간이 사탄과 혈연관계(血緣關係)를 맺음으로 말미암아, 사탄은 타락된 인간을 중심하고, 장차 하나님이 이루시려는 것과 같은 형의 세계를 앞장서 이루어 나왔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인류역사는 원리형(原理型)의 비원리세계(非原理世界)를 형성하여 나온 것이다. 따라서 인류역사의 종말에 있어서는, 하나님이 지상천국(地上天國)을 복귀하시기 전에, 사탄을 중심으로 한 그와 같은 형의 비원리세계가 먼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공산주의세계(共産主義世界)인 것이다. Meanwhile, on the basis of his relationship of blood ties with the first human beings, Satan has worked through fallen people to realize, in advance of God, a perverted form of the ideal society which God intends to realize. As a result, in human history we witness the rise of unprincipled societies which are built upon twisted versions of the Principle. At the end of human history, before God can restore the Kingdom of Heaven on earth, Satan will have built an unprincipled world in a distorted image of the Kingdom: this is none other than the communist world. 사탄은 이처럼 하나님이 이루시려는 뜻을 항상 앞질러 비원리적으로 이루어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복귀섭리노정(復歸攝理路程)에서는 참것이 나타나기 전에 거짓 것이 먼저 참것과 같은 모양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에 앞서 적그리스도가 나타날 것을 예언하신 성서의 말씀은 이러한 원리로써만 해명될 수 있는 것이다. This is an instance of how Satan, who had a headstart in the course of history, has always mimicked God’s plans in advance of God. In the course of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a false likeness precedes the appearance of the true.18 Jesus’ prophecy that false Christs will appear before the Second Advent of Christ19 can be elucidated by this aspect of the Principle.

Ⅰ 복귀섭리시대에 있어서의 역사 발전 The Progress of History in the Age of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타 락된 인간들에 의하여 처음으로 이루어진 사회는 원시공동사회(原始共同社會)였다. Some historians have held that the first society built by fallen people was a primitive collective society. 이 사회는 사탄을 중심하고 서로가 유무상통(有無相通)하던 사회로서, 원래 하나님이 완성한 인간을 중심하고 이루려 하셨던 공생공영공의주의사회(共生共榮共議主義社會)를 사탄이 앞질러 비원리적으로.이루어 놓은 것이었다. From the viewpoint of God’s providence, the primitive societies which fallen people built were centered on Satan. Though Satan may have tried to build a collective society where people shared their possessions with each other, it would still have been only a defective imitation of the society which God intends to build through people of perfect character: a society characterized by interdependence, mutual prosperity and universally shared values. 만약 이 사회에 투쟁도 분열도 없었다면 이 사회는 그대로 영속(永續) 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Regardless of the form, this satanic primitive society could not have been free of struggle and division. If it had been, it would have perpetuated its existence forever without change, and God’s providence of restoration could never have been fulfilled.

그 러나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타락인간은 그 개체에 있어 두 마음이 서로 싸우고, 또 이 마음의 싸움이 행동으로 나타나서 개체와 개체가 서로 싸우게 되므로, 원시공동사회가 그대로 평화로이 유지될 수는 없었던 것이다. In reality, the two minds at war within a fallen person give rise to internal conflicts which manifest themselves through his actions and cause him to be in conflict with others. Therefore, it would have been impossible for a satanic primitive society pursuing the goal of collective living ever to maintain peace. 더구나 이 사회가 경제적인 이해관계를 서로 달리하는 사회에로 발전함에 따라서, 그 싸움이 더욱 크게 전개되어 온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복귀섭리(復歸攝理)에 맞추려는 인간의 본심(本心)의 작용에 의하여, 사탄을 중심하고 이루어졌던 원시공동사회에는 일찍부터 싸움에 의한 분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Due to the activity of the original mind calling people to respond to God’s providence of restoration, divisions between relative good and evil surely arose in primitive societies under satanic sovereignty.

사 탄을 중심한 인류죄악사의 발전과정을 보면, 원시공동사회(原始共同社會)에서 분열된 인간을 중심하고 씨족사회(氏族社會)가 형성되었고, 그것이 더 성장하여 봉건사회(封建社會)를 이루었으며, 그 판도와 주권을 더욱 확장하여 군주사회(君主社會)를 이루었던 것이다. 이것은 장차 하나님이 이 죄악세계에서 선한 개체를 부르시어, 그들을 중심하고 선의 씨족사회를 세우고, 나아가 선의 봉건사회를 이루어 가지고 선의 왕국을 건설함으로써, 메시아를 맞기 위한 선의 판도와 주권을 수립하려 하셨기 때문에, 사탄이 또한 이것을 먼저 알아 가지고 그러한 형의 노정을 앞질러 걸어 나온 것이었다.

실 상 하나님은 이러한 죄악세계에서 선의 중심으로 아브라함을 부르시어, 그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받들 수 있는 자녀를 번식케 함으로써, 이스라엘 씨족사회를 세우셨던 것이다. 그 후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애급(埃及)에 들어가서 씨족으로부터 부족으로 발전되었으며, 그들이 가나안으로 돌아온 후에는 사사시대(士師時代)를 이루었던 것인데, 이 사사를 중심한 사회가 바로 이스라엘 봉건사회였다. God called Abraham out of the sinful world to be the standard-bearer of goodness and blessed him with descendants who would uphold the Will of God. God raised up Abraham’s descendants into the first Israelite clan society. They entered Egypt as a clan society, but by the time they left Egypt for Canaan, they had grown into a tribal society. Israelite society in the period of the judges was a feudalistic society.


그 러면 이 사회를 어찌하여 봉건사회라고 하는가? 봉건사회의 특성은 봉사와 복종을 전제로 하는 주종관계(主從關係)에 의한 정치제도와 봉토(封土)를 중심한 봉쇄적인 자급자족의 경제체제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사시대는 바로 이러한 성격의 사회였던 것이다. 즉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민족의 각 지파(支派)에게는 땅이 분배되었고, 그 지파들은 대영주(大領主)와 같은 위치에 있었던 사사(士師)를 중심하고 봉건사회를 형성하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대를 이스라엘 봉건사회라고 한다.


봉 건사회(封建社會)의 백성들은 그 사회의 성격상 그 영주(領主)의 사상(思想)과 영도(領導)에 절대 순종굴복하였다. 따라서 그 영주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서 있는 한, 그 백성들은 자연히 그를 따라서 하늘편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또 그들은 이와 같이 주종관계에 의한 봉쇄적인 정치와 경제의 사회제도하에 있었기 때문에, 사탄의 외침(外侵)을 당하지 않는 환경 가운데서 생활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Regardless of the form, this satanic primitive society could not have been free of struggle and division. If it had been, it would have perpetuated its existence forever without change, and God’s providence of restoration could never have been fulfilled. 따라서 씨족사회(氏族社會)가 봉건사회로 발전하게 된 것은 사탄의 소유를 하늘편으로 빼앗아 넘김으로써, 하늘편 주권에 속하는 보다 큰 판도를 이루어 가지고 사탄의 침범을 막기 위함이었다. The main reason that a clan society develops into a feudalistic society is to bring property and people, which had belonged to Satan, back to God’s side. By expanding the territory under God’s sovereignty, they are better placed to ward off Satan’s invasion.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기 때문에, 또 그것을 안 사탄은 여기에 대비하여 한 걸음 앞질러서 먼저 사탄편 봉건사회를 이룸으로써, 사탄주권을 유지하려 하였던 것이다. Understanding this divine providence, Satan tried to preserve his rule by preempting it and forming his own feudalistic societies many centuries earlier.

또 한편 봉건사회는, 보다 더 큰 주권과 판도의 군주사회(君主社會)를 이루기 위한 기대를 조성하기 위하여 오게 되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 봉건사회로써, 사탄편의 침범을 막을 수 있는 소단위의 하늘편 주권과 백성과 경제적인 판도를 만든 후에, 다시 이것들을 통합하여 보다 더 큰 주권과 백성과 경제적인 판도로 확장하고 강화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군주사회가 오게 되었던 것이니, 이것이 바로 사울왕으로 시작된 통일왕국시대(統一王國時代)였다. The providential purpose of the feudalistic society of early Israel was to lay a foundation for the establishment of a monarchic society with greater territory and more powerful sovereignty. The monarchic society amalgamated the smaller units of political and economic sovereignty secured by the earlier feudalistic society into a single territory with a large population, a strong economy and a well-defended sovereignty. This was done with the establishment of the united kingdom of Israel founded by King Saul.

이 미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예수님은 어디까지나 만왕의 왕으로 오신 분이었다(계 11 : 15).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의 군주사회를 형성하신 것은, 장차 메시아가 오셔서 만왕의 왕으로 군림하실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Jesus was to come as the King of Kings.20 God built the monarchic society in Israel to prepare a strong enough foundation for him to come as the Messiah and rule as King of Kings.

하 나님이 이러한 섭리 밑에서 이스라엘 군주사회를 세우려 하셨었기 때문에, 사탄편에서는 또다시 이것을 앞질러 먼저 사탄을 중심한 군주사회(君主社會)를 형성함으로써, 하늘의 섭리를 막아 왔던 것이다. Long before this, Satan understood the providence to receive the Messiah behind the construction of the monarchy and had formed his own monarchic societies to block God’s providence. 그러므로 통일왕국시대(統一王國時代)가 오기 전에, 이미 사탄세계에서는, 애급왕국(埃及王國)이 기원전 수십 세기에 제1왕조를 세워 그 후 30왕조나 계승되었었고, 고 바빌로니아왕국은 기원전 18세기 함무라비왕 때 벌써 전메소포타미아를 통일하였던 것이며, 힛타이트왕국은 기원전 14세기에 시리아를 중심으로 동방(東方)의 최강국(最强國)이 되었었다. Many centuries before the founding of the united kingdom of Israel, the first dynasty of Egypt had been founded, and pharaonic Egypt continued through some thirty dynasties. The ancient kingdom of Babylon had ruled all of Mesopotamia during the reign of King Hammurabi in the eighteenth century B.C., and the Hittites ruled supreme over the Near East in the region of Syria during the fourteenth century B.C.그리하여 사탄편 세계에서도, 역시 하나님의 복귀섭리(復歸攝理)에 대응하는 인간 본심의 작용에 의하여, 보다 선한 왕국과 보다 악한 왕국이 서로 싸우면서 왕국을 단위로 한 분립역사(分立役事)를 일으켜 나왔던 것이다. Even within the satanic world, there was constant warfare between relatively good kingdoms and relatively evil kingdoms, resulting in the separation of good from evil. This drive toward goodness is rooted in the original mind, which responds to the call of God’s providence of restoration.

따 라서 당시의 솔로몬왕이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받들었더라면, 그는 애급, 메소포타미아,크레타(혹은 미노아)등 3대 문명 삼대문명(三大文明)을 흡수한 문화적인 사회환경에서, 그의 뛰어난 정치능력을 발휘하여 동방제국(東方諸國)을 통일하였을 것이었고, 나아가서는 메시아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세계적인 판도를 형성하였을 것이었다. 그러나 솔로몬왕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이 군주사회를 붕괴시키는 섭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Had King Solomon served God’s Will until the end, he could have exercised his God-given political skills to unify the nations of the Near East. He could have assimilated the Egyptian, Minoan and Mesopotamian civilizations, which were weak at that time. He thus would have built a worldwide dominion to which the Messiah could come and realize God’s sovereignty on earth. Unfortunately, Solomon fell into idolatry. Consequently, God had to begin a dispensation to dismantle this monarchic society which He had so painfully built up.

이 와 같이 통일왕국시대의 왕들이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세워, 하나님의 주권을 복귀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Since the kings of the united kingdom of Israel did not lay the foundation for the Messiah, nor complete the groundwork upon which God could restore His sovereignty, 결국 하나님은 이 왕국을 남북(南北) 두 왕조로 분립하셨다. 그리하여 하늘 뜻을 배반하였던 북조(北朝)는 이방인 앗시리아(애급, 바빌로니아, 힛타이트 등의 왕국이 쇠미해짐에 따라, 이 앗시리아왕국이 강대해져서 기원전 8세기에 애급을 포함한 오리엔트의 중심부를 정복하여 최초의 세계제국을 건설하였었다)에 부쳐 멸망하게 하셨고, 하늘 뜻을 받들던 남조(南朝) 유대도 얼마 안 가 하나님의 뜻을 배반하게 되자, 신바빌로니아 (앗시리아제국이 멸망한 후 갈대아인에 의하여 바빌론을 수도로 하여, 신바빌로니아왕국(혹은 갈대아왕국)이 창건되었었다)에 부쳐서 멸망하게 하셨던 것이다. God eventually divided the kingdom into two: Israel in the north and Judah in the south. When they continued to transgress against God’s Will, God let the northern kingdom of Israel be destroyed at the hands of the gentile nation of Assyria. The Assyrians in the eighth century B.C. had conquered the entire ancient Near East, including Egypt, to build the first world empire. The kingdom of Judah upheld God’s Will for a time, but then rebelled against Him. Hence, God allowed it to fall into the hands of the neo-Babylonian Empire, which had supplanted Assyria as the second world empire.

하 나님은 유대왕국을 멸하신 후, 메시아가 강림하실 때까지 유대민족을 여러 이방(異邦)들에게 속하게 하심으로써, 이 민족의 왕위를 비워 두셨다. 특히 유대민족을 민주주의(民主主義)의 기틀이 될 헬라문명권 내에 속방(屬邦)이 되게 하심으로써, 장차 메시아가 강림하실 때 유대민족이 그를 환영하기만 하면, 민의(民意)에 의하여서 언제든지 메시아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민주주의형의 사회를 이루어 놓으셨던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민의는 예수님을 왕위에 올려 세우지 못하고 그를 십자가에 살해하고 말았으므로, 이것으로써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후손을 중심하고 이루려 하셨던 2천년의 복귀섭리(復歸攝理)의 목적은, 영적으로만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After the fall of Judah, God kept the throne of Israel vacant and put the Jewish people under the control of successive gentile empires for most of the period leading up to the coming of the Messiah. Most notably, God placed them in the Hellenistic cultural sphere, which laid the ideological framework for democracy. God fashioned Israel’s society in the form of democracy in order that when the Messiah came, he could be hailed as their king by the will of the people, who should have welcomed him wholeheartedly. However, the Jewish public did not so elevate Jesus. Without public support, he was crucified. Consequently, at the consummation of the providence which had begun two thousand years earlier with the calling of Abraham and his descendants out of the sinful world, its purpose was attained only spiritually.

Ⅱ 복귀섭리연장시대에 있어서의 역사 발전 The Progress of History in the Age of the Prolongation of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1. 복귀섭리와 서양사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and the History of the West

기 독교(基督敎)를 박해하던 로마제국은 4세기 말에 이르러 드디어 돌아가신 예수님 앞에 굴복하고, 기독교를 국교(國敎)로 정하게 되었었다. 그러나 당초에 The Roman Empire, which had persecuted Christianity, finally knelt before the crucified Jesus in the fourth century and adopted Christianity as the state religion. Nevertheless, 유대민족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모시어 하나가 되었더라면, 로마제국을 중심하고 지중해를 기반으로 한 고대 통일세계는 응당 살아 계신 예수님에게 감화되어, 그를 왕으로 모시고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왕국을 이루었을 것이었다. the original providential role of the Roman Empire, which had unified the ancient world around the Mediterranean Sea, was to lay the foundation for Christ’s kingdom on earth. Had the Jewish people believed in Jesus as the Messiah and united with him, the Roman Empire would have been won over by Jesus during his lifetime. Jesus would have been honored throughout the empire as the King of Kings. He would have established a worldwide dominion with Jerusalem as its capital.그러나 유대민족은 불신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멸망하였고, 메시아왕국을 위한 터전이 되었어야 했던 로마제국도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여, 서기 476년에는 서로마가 게르만의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 의하여 패망되고 말았다. However, because the Jewish people disbelieved, Judea was destroyed and the Roman Empire was fated to decline. After a century of barbarian invasions, the Western Roman Empire came to an end in 476 A.D. 그리하여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원한의 땅 유대에서 서로마의 판도였던 서구(西歐)로 옮겨지게 되었다. In this manner, the center of God’s providence of restoration shifted from Judea, the land of God’s bitter grief, to Western Europe, formerly the territory of the Western Roman Empire now occupied by the Germanic tribes.

따 라서 예수님 이후에 있어서의 기독교에 의한 영적 복귀섭리는 서구를 발판으로 하고 이루어 나왔기 때문에, 이 시대의 복귀섭리역사는 서구에서만 전형노정(典型路程)을 따라서 발전하게 된 것이다. Accordingly, the spiritual providence of restoration based on Christianity has been conducted primarily in Western Europe. Only in Western Europe has the history of this era progressed strictly according to the pattern set by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21유물사관(唯物史觀)에서 논하고 있는 역사발전 과정도 서구의 역사에서만 적응되고 있는 바, 그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되어 서구를 중심한 기독교사는 복귀섭리연장시대(復歸攝理延長時代)를 형성한 중심사료(中心史料)가 된 것이다. The history of Christianity in Western Europe provides us with information about the events which shaped the Age of the Prolongation of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2. 종교사와 경제사와 정치사의 상호관계 The Mutual Relations between Religious History, Economic History and Political History

하 나님이 인간으로 하여금 유형(有形) 무형(無形)의 두 세계를 주관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육신(肉身)과 영인체(靈人體)의 두 부분으로써 인간을 창조하셨다 함은 이미 창조원리(創造原理)에서 논술되었다.22 그러므로 인간이 타락되지 않았더라면 그의 영인체와 육신이 함께 성장하여 완성됨으로써, 영육 양면의 지성(知性)이 동시에 지상의 육신생활 가운데서 완전한 조화를 이루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됨으로 인하여 영육 양면의 무지에 빠지게 되었었다. 여기에서 인간의 영적인 무지는 종교에 의하여, 그 육적인 무지는 과학에 의하여 계발(啓發)되어 나왔던 것이니, After human beings fell and became ignorant of both the spiritual and physical worlds, God worked to overcome spiritual ignorance through religion and physical ignorance through science.23이에 관해서는 이미 전편 제3장 제5절 I 에서 논하였다 ( cf. Eschatology Pt1 Ch3 5.1).

그 런데 영적인 무지는, 종교로써 타락인간 가운데 잠재해 있는 그 본심을 불러 일으킴으로써, 그들이 보이지 않는 원인적인 세계를 찾아 나아감에 따라 점차 일깨워져 왔다. 그러나 종교는 누구나가 다 긴절(緊切)한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영적인 면의 계발은 어느 특수한 인간에 있어서는 비약적이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대단히 완만한 것이다. Religions have helped fallen people gradually overcome their spiritual ignorance by stimulating their latent original mind to activity. They have been teaching people to focus their lives on the invisible, causal world of God. Since not everyone feels an immediate need for religion, only a few exceptional people attain spiritual knowledge rapidly. For the vast majority, spiritual growth remains a slow process.이것은 종교가 세계적으로 보편화되어 있는 오늘에 있어서도, 영적인 면에서는 고대인(古代人)이나 대차(大差)없는 인간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로써 미루어 알 수 있다. We see this from the fact that even today, with religions widespread throughout the world, people’s spiritual level is often no better than that of people in ancient times.

그 런데 이와는 반대로 육적인 무지는, 누구나 인식할 수 있는 결과의 세계 즉 자연계(육계)에 대한 것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것으로써 계발되어 왔다. 그리고 과학은 현실을 타개하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긴요하다. 그러므로 육적인 무지에 대한 계발은 급진적이면서도 보편적이다. On the other hand, everyone is familiar with the findings of science, which have greatly enhanced our knowledge of the physical world. Since science deals with practical matters, everyone feels a strong need for it. Thus, the increase in humankind’s knowledge of the physical world has generally been widespread and rapid.

이 렇듯 찾아가는 대상이, 종교에 있어서는 보이지 않는 원인(原因)의 세계이므로 초현실적(超現實的)인 것인데 반하여, 과학에 있어서는 보이는 결과(結果)의 세계 즉 물질세계(物質世界)로서 현실적인 것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종교와 과학은 이론적으로 타협할 수 없는 것으로 상충되어 왔다.Furthermore, while the objects of religious study are in the intangible, transcendent world of cause, scientific research examines tangible, material objects in the world of result. Hence, to this day religion and science remain theoretically irreconcilable.그뿐 아니라 피조세계(被造世界)의 주권을 갖고 있는 사탄이 현실생활을 통하여 인간에게 침범하는 관계로, 지금까지 종교의 길은 현실을 버리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것으로 생각되어 왔기 때문에, 현실을 추구하는 과학과 서로 조화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Moreover, because Satan, who holds sovereignty over the universe, attacks and corrupts people through their life in the world, religions teach one to deny the world. As such, religions cannot easily harmonize with science, which seeks to improve life in the world.

다 음 장 제1절에서 상세히 논급하겠거니와, 하나님이 원래 인간의 외적인 육신(肉身)을 먼저 창조하시고 다음으로 내적인 영인체(靈人體)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창 2 : 7), 재창조 원칙(再創造原則)에 의한 복귀섭리(復歸攝理)도 외적인 것에서 내적인 것으로 복귀해 가는 과정을 밟게 된다. 이러한 섭리적 원칙으로 보더라도 과학과 종교가 서로 조화될 수 없는 발전과정을 밟아 나온 것은 사실이다. We know that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outward physical body of human beings before imbuing them with their inner spirit.24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which is a work of re-creation, follows the same pattern, from the external to the internal. From this providential perspective, it is evident that during their course of development, religion and science are often at variance, even in conflict.25

이 러한 부조화(不調和)는 종교와 경제의 관계에 있어서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경제도 역시 과학과 같이 현실세계에 속하는 것으로서, 더욱이 과학의 발달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발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계로 인하여 하나님의 내적인 섭리에 의한 종교사(宗敎史)와 그 외적인 섭리에 의한 경제사(經濟史)는, 그 발전에 있어서 서로 방향과 진도를 달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전형노정(典型路程)을 밟아 온 서구에 있어서의 역사발전을 섭리적인 면에서 파악하기 위하여는, 기독교사(基督敎史)와 경제사를 따로 갈라 가지고 고찰해 보지 않으면 아니 된다. The same discord is found in the relationship between people’s religious and economic life. Like science, economic activities deal with the practical world. Indeed, economic progress bears a close relationship to the development of science. Accordingly, religious history, based on the internal development of God’s providence, and economic history, based on the external development of His providence, have taken divergent directions and have progressed at different rates. Therefore, to grasp the progress of the history of the West, which has followed the pattern set by God’s providence of restoration, we must examine the history of Christianity and Western economic history separately.

그 런데 종교와 과학이 그러하듯이, 종교와 경제도 타락인간(墮落人間)의 내외 양면의 생활을 각각 분담하여 복귀해야 될 사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이 전혀 관계없이 발전할 수는 없는 것이다. As with the relationship between religion and science, religion and economy are related in that they are responsible for restoring the internal and external aspects of fallen people’s lives. 그러므로 종교와 과학, 따라서 종교와 경제는, 그 발전과정에 있어서 서로 상충적인 면을 지니면서도, 우리의 사회생활과 결부되어 자각 기독교사와 경제사를 형성해 온 것이다. Although religion and economy, like religion and science, seem to develop at variance with each other, they are related in the life of society. Thus, there has been some mutual influence between the history of Christianity and economic history.

그 러면 그것들은 우리의 사회생활과 어떻게 결뉴(結紐)될 수 있었던가? 그것은 바로 정치에 의해서였다. Religion and economy are integrated with our life in society through politics. 기독교화했던 서구(西歐)에서였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Especially in Western Europe, politics has sought to connect 서구에 있어서의 정치는 급진적인 과학의 발달에 따르는 경제발전과, 복귀섭리의 뚜렷한 방향을 잡지 못하고 헤맸던 기독교의 움직임을 사회생활 가운데서 조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economic development, which has closely followed the progress of science, with the path of Christianity, which has often lacked a clear sense of its providential direction. 그의 정치사(政治史)는 종교와 경제를 조화시키려는 또 하나의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복귀섭리를 위한 역사의 발전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하여는, 정치사도 역시 별도로 고찰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Western political history has pioneered a path through which to harmonize religion and economy. Therefore, to accurately grasp the progress of history as it moves toward the goal of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we must also investigate separately the history of politics.

이에 대한 실례로서, 17세기 말엽에 있어서의 서구(西歐)의 역사를 놓고 그 발전과정을 고찰해 보자. As an illustration of how the courses of religious, political and economic development have progressed separately, let us sketch the historical situation of Western Europe toward the end of the seventeenth century.

먼 저 종교사(宗敎史)의 면에서 살펴보면, 이 시대에는 이미 기독교민주주의사회(基督敎民主主義社會)가 형성되어 있었다. With respect to the history of religion, democratic values had already taken root in the Christianity of this period. 즉 1517년의 종교개혁(宗敎改革)으로 인하여 교황이 독재하던 영적인 왕국이 붕괴됨으로써, 중세인들은 교황에 예속되어 있던 신앙생활에서 해방되어, 누구나 성서를 중심하고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었다. Christianity of a monarchic polity under the rule of the papacy had fragmented with the Protestant Reformation in 1517. The people of Europe, whose life of devotion in medieval times had been subject to the papal hierarchy, were gradually liberated to lead a Christian life based on their own reading of the Bible. 그러나 정치사(政治史)의 면에서 보면 이 시대에는 전제군주사회(專制君主社會)가 대두되어 있었고, 경제사(經濟史)의 면에서는 아직도 장원제도(莊園制度)에 의한 봉건사회(封建社會)가 엄존하고 있었다. 이와 같이 동시대의 동사회가 종교면에서는 민주주의사회가 되고, 정치면에서는 군주주의사회가 되며, 경제면에서는 봉건주의사회가 되기 때문에, 복귀섭리의 입장에서 이 시대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하여는, 그 발전과정을 각각 별도로 고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With regard to the politics of this period, absolute monarchy was at its height. Economically, feudal society based on the manor system persisted in many parts of Europe. Thus, the same European society was becoming democratic with respect to religious life while remaining monarchic with respect to political life and feudal with respect to economic life.

그 러면 복귀섭리시대 (구약시대)에 있어서의 역사 발전은 어찌하여 그러한 과정을 밟아 나오지 않았는가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고대사회(古代社會)에 있어서는 과학의 발달이 거의 정돈상태(停頓狀態)에 있었기 때문에 경제발전도 역시 그러하였다. 아직도 생활양식이 분화되기 전인 구약시대(舊約時代)의 이스라엘 민족은 지도자들의 명령에 의하여 엄격한 율법(律法)에 추종하는 주종관계(主從官階)의 사회제도하에서 단순한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종교생활은 곧 그들의 사회생활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당시에는 종교와 정치와 경제가 분립된 발전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We also should clarify why the development of history through most of the Old Testament Age was not characterized by this pattern of separate development. In ancient Israel, the progress of science was extremely slow. Hence, its economic life did not develop, and its society had little specialization. The people led a simple life under a social system in which religion was an integral part of their daily life. Bound by master-servant relationships and the strict code of the Mosaic Law, they had to obey their rulers in matters both political and religious. In that age, religion, politics and economy did not progress separately.


3. 씨족사회 Clan Society - aaa


그러면 우리는 여기에서 복귀섭리연장시대 (신약시대)에 있어서의 종교와 정치와 경제 등의 각 부면으로 본 역사발전은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사 탄을 중심한 원시공동사회(原始共同社會)는 하나님의 복귀섭리(復歸攝理)에 대응하는 인간의 본심(本心)의 작용에 의하여 분열되어, 그 중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인간이 분립됨으로써, 하늘편 씨족사회(氏族社會)가 형성되었다 함은 이미 위에서 밝힌 바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살해한 유대민족은, 이미 사탄편 계열로 전락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사회를 그대로 두시고는 복귀섭리를 할 수 없으셨던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 사회를 분열시켜 그 가운데서 독실한 기독교 신도들을 부르시어, 그들을 중심하고 기독교씨족사회(基督敎氏族社會)를 세우셨던 것이다. With the crucifixion of Jesus, the Jewish nation had fallen to Satan’s side and God could not continue with His providence of restoration in that society under such circumstances. Consequently, God broke up that society, calling devout believers out of it to establish a Christian clan society.

구 약시대에 있어서 야곱의 12자식을 중심한 70가족이 이스라엘 씨족사회를 형성하여 섭리노정(攝理路程)을 출발했던 것과 같이, 신약시대에 있어서는 예수님을 중심한 12제자와 70문도가 기독교씨족사회를 형성하여 섭리노정(攝理路程)을 출발했던 것이다. 기독교씨족사회는 원시기독교사회(原始基督敎社會)였기 때문에, 그때는 아직도 정치나 경제에 있어서의 어떠한 제도가 필요하지 않았던 시대였다. 따라서 이 시대에는 종교와 정치와 경제가 분립된 발전을 할 수 없었다.

기 독교씨족사회(基督敎氏族社會)는 지중해를 기반으로 한 고대 통일세계 안에서 로마제국의 극심한 박해를 받아가면서 번성하여 기독교부족사회(基督敎部族社會)를 형성하는 데 이르렀었다. 그리고 4세기 후반으로부터 시작되었던 민족들의 대이동에 의하여 서로마제국은 드디어 476년에 쇠망(衰亡)하였고, 그 판도 안으로 이동해 온 게르만 민족에게 기독교가 침투됨으로써 그들을 중심하고 광범한 기독교사회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Despite severe persecution, Christian clan society gradually prospered in the Roman Empire around the Mediterranean Sea and developed into a Christian tribal society. Battered by the mass migrations of peoples which began in the latter half of the fourth century, the Western Roman Empire fell by 476 A.D. Christian society expanded greatly as Christianity was brought to the Germanic peoples who migrated into this territory.

4. 봉건사회 Feudalistic Society


역 사의 발전과정에 있어서 씨족사회(氏族社會) 다음에 오는 것은 봉건사회(封建社會)인 것이다. 그리하여 서로마제국의 멸망을 전후하여 왕권(王權)이 쇠미해지고 국가가 무질서한 상태에 빠졌을 때, 봉건사회는 형성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With the progress of history, clan society developed into feudalistic society. A feudalistic society was born in Europe when, around the fall of the Roman Empire, imperial authority waned and the empire sank into chaos.. 이때부터 서구의 기독교사회는 종교와 정치와 경제가 분화되어, 각각 상이(相異)한 발전을 해 나아가게 되었다.

봉 건사회는 대 ·중 ·소의 영주(領主)와 기사(騎士)들 사이에, 복종과 봉사를 전제로 하고 맺어진 주종관계에 의한 정치제도(政治制度)와, 장원제도(莊園制度)에 의한 봉쇄적인 자급자족의 경제제도로써 형성되었었다. Political power was diffused among many lords, each ruling over his territory in the absence of any national authority. Feudalistic society in Europe then gradually developed into a political system based on master-servant relationships at every level, as between lords of different ranks and their knights, and the self-sufficient economy of the manor system. 국토는 많은 영주들에 의하여 분할되었고, 국왕은 사실상 영주 중의 하나였으므로 국왕의 권력도 지방분권적이었다. 영주들은 상부로부터 은대지(恩貸地)로 토지를 분배받아 그들의 독립 영지(領地)를 이루고 그 안에서 재판권까지 행사하였었다. 따라서 이 영지는 거의 국가권력을 떠난 사령(私領)이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되어진 사령(私領)을 장원(莊園)이라고 한다.


자 작농(自作農)의 하민(下民)들이 주권자들의 보호를 받기 위하여, 자기의 소유지를 영주 또는 사원(寺院)에 기증하고, 그 토지를 다시 은대지로 대여받아서 된 장원도 있었다. 이와 같이 되어 장원은 전국에 퍼져 있었던 것이다. 최하급의 기사는 하나의 장원을 할여받아 영주에게 사병(私兵)으로서 종사하였지만, 국왕이나 영주는 수백 수천의 장원을 소유했던 것이다.


종 교면에서도 그것은 기독교를 중심하고 위에서 말한 봉건사회(封建社會)와 똑같은 방향으로 발전하게 되었으니, 이것을 기독교봉건사회(基督敎封建社會)라고 한다. 즉 교구장(敎區長), 대주교(大主敎), 주교(主敎)는 대·중·소의 영주에 해당되는 지위를 가지고 있었고, 국왕이 영주 중의 하나였던 것과 같이 교황도 교구장 중의 하나였다. Religious life in Europe during the period of regional church leadership developed along the same lines as the early feudalism of its political and economic life; hence it may be termed feudalistic Christianity. Patriarchs, archbishops and bishops assumed positions corresponding to major, medium and minor feudal lords. As a king was only one of the great feudal lords, the pope was only one of the five patriarchs. 거기에도 절대적인 주종관계에 의한 종교적인 정치제도가 있었고, 주교들은 신자들로부터 바쳐진 봉토(封土)를 가지게 되어, 그들은 봉건적 계급층들 중에서 유력한 지위를 가지고 있던 영주들이기도 하였다.

다 음으로 경제면에서 이 시대를 고찰하여 본다면, 이 시대는 고대 노예제도(奴隸制度)에서 장원제도(莊園制度)로 옮겨진 시대였다. With respect to economic life, this period began with a time of transition from the slave society of ancient Rome to the manor system. 따라서 평민들이 이때부터 토지를 소유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시대의 토지제도에 의한 신분은 대체로 지주, 자작농, 농노(반자유 신분), 노예(부자유 신분) 등의 4계급으로 갈라져 있었다.

이 와 같이 하나님은 게르만 민족을 새로운 선민(選民)으로 교화(敎化)하여 봉건사회를 수립함으로써, 쇠망한 서로마의 터전에다, 종교와 정치와 경제의 3면으로 소단위의 하늘편 판도들을 강화하여, 장차 하늘편 왕국을 건설하기 위한 터전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out of the ashes of the Western Roman Empire, God raised a feudalistic society among the newly-Christianized Germanic peoples whom He had chosen to lead the providence. By strengthening small units under godly sovereignty in the spheres of religious, political and economic life, God laid the groundwork to establish a godly kingdom.


5. 군주사회와 제국주의사회 Monarchic Society and Imperialism


역사의 발전과정에 있어서 봉건사회 다음에 오는 것은 군주사회(君主社會)인 것이다. With the progress of history, feudalistic society developed into monarchic society. 그러면 이 때의 서구(西歐)에 있어서의 정치면에서 본 군주사회는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서 구에 이동된 게르만 민족이 세웠던 국가들은 모두 그 존립기간(存立期間)이 짧았었으나, 프랑크왕국만은 오래도록 존속되었다. 프랑크는 서게르만의 한 부족이었는데, 그가 메로빙왕조를 세운 후, 기독교(基督敎)와 결합하고 로마문명을 흡수하여, 서구에다 게르만적인 로마풍의 세계를 이루었던 것이다. 이 왕조(王朝)가 몰락한 후 카알 마르텔은 서침(西侵)한 아라비아인을 물리쳐 세력을 폈고, 그의 아들 피핀은 카롤링왕조를 세웠다. 피핀의 아들 카알대제는 일찍부터 성어거스틴의 '신국론(神國論)'을 숭상하였었는데, 왕위(王位)에 오르자 그는 어거스틴의 '신국론'을 국가이념으로 하는 군주국가(君主國家)를 세우려 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카알대제는 중부유럽을 통일하고, 민족 대이동으로 혼란된 서구를 안정시켜서 강력한 프랑크왕국을 확립하였었다.

The kingdoms built by the Germanic peoples in Western Europe were all shortlived, xcept for the Kingdom of the Franks. The Frankish kings of the Merovingian dynasty received Christianity and absorbed the heritage of Roman civilization to form a Germanic-Roman world in Western Europe. After the Merovingian kings lost power, Charles Martel became the effective ruler of the Franks. He expanded the kingdom by defeating the Moors, who had invaded from the southwest. His son, Pepin the Short, became the first Carolingian king and was the father of Charlemagne. Charlemagne thought highly of St. Augustine’s vision of a Christian kingdom and made it the guiding principle of the realm. Charlemagne’s empire unified western and central Europe, bringing stability to lands which had formerly been in turmoil due to massive migrations.

다 음으로 종교면에 있어서 기독교봉건사회(基督敎封建社會)에 뒤따라 온 기독교군주사회(基督敎君主社會)는 '메시아를 위한 영적 기대' 위에서 교황(敎皇)을 중심하고 세워졌던 국토 없는 영적 왕국사회였다. In the sphere of religion, monarchic Christianity, which followed feudalistic Christianity, was a spiritual kingdom which transcended national borders. 그리고 교황 레오 3세가 기원 800년에 카알대제를 축복하고, 그에게 황제(皇帝)의 관을 수여하여 천적(天的)인 기업을 상속함으로써, 교황을 중심하고 이루어진 영적인 왕국과 정치적으로 형성된 프랑크왕국이 하나되어 기독왕국(基督王國)을 이루었던 것이다.

기 독왕국시대(基督王國時代)는 구약시대의 통일왕국시대(統一王國時代)와 동시성의 시대였다. 이처럼 봉건시대(封建時代)에 뒤따라 왕국시대가 왔던 것은 봉건사회를 통합함으로써 더욱 큰 하늘편의 주권과 백성과 판도를 형성하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위에서 이미 논한 바와 같이, 천사장(天使長)의 입장에서 실체세계(實體世界)를 복귀하기 위한 터전을 마련해 온 교황은 국왕을 축복한 후에 가인의 입장에서 그에게 순종하고, 또 국왕은 교황의 이념에 따라 메시아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를 하여 기독왕국을 완전히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세웠더라면, 이 시대가 바로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말세(末世)가 될 것이었다. 이렇게 되어 그때까지 서로 타협을 보지 못하고 상충되어 왔던 종교와 과학을 하나의 과제로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 진리가 나왔더라면, 그때 바로 종교와 정치와 경제가 하나의 이념을 중심하고 완전히 일치된 방향으로 발전함으로써, 이 터전 위에서 '재림하실 메시아를 위한 기대'는 이루어졌을 것이었다. It was explained earlier that the pope had been leading the Church from the position of archangel in order to pave the way for an earthly kingdom. But after crowning the emperor and giving him God’s blessing, the pope was then to serve him from the position of Cain.26 The emperor, in turn, was to uphold the teachings of the papacy and carry on political work to realize a kingdom fit to receive the Messiah. Had they thus built the Christian empire in full accordance with the Will of God, this period would have been the Last Days of human history, when the Messiah could have come. The new truth would have then appeared to resolve the problems of religion and science as an integrated human endeavor, guiding religion, politics and economy to progress in one unified direction based on God’s ideal. On this basis, the foundation for the Second Advent of the Messiah was to have been established. Moreover, with the dawning of the period of the Christian empire, feudalism should have come to a complete end.

그 렇기 때문에 기독왕국시대가 옴으로써 봉건시대는 그때에 완전히 끝나야만 할 것이었다. However, the popes and the emperors deviated from the Will of God. 그러나 교황이나 국왕들이 모두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게 됨에 따라서, 카알대제의 본래의 이상(理想)을 실현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완강한 봉건제도(封建制度)의 기틀은 무너지지 않고 그 후 오래도록 존속하게 되었었다. 따라서 종교와 정치와 경제가 여전히 서로 분립됨으로써, 교황을 중심한 영적인 왕국과 국왕을 중심한 실체적인 왕국도 여전히 분립되어 상충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었었다. feudalistic society was not dismantled; on the contrary, it grew stronger over the next several centuries. Religion, politics and economy remained divided, with the spiritual kingdom ruled by the papacy coming into frequent conflict with earthly kingdoms ruled by kings.


이 와 같이 되어 카알대제는 원숙한 봉건제도의 터전 위에 왕국을 건설하였으나, 그 장벽을 무너뜨릴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실상 일개 대영주(大領主)의 입장에 불과하였다. 기독왕국(基督王國)이 이렇듯 재림하시는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왕국을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봉건제도는 점점 더 강화되어 정치면에서의 봉건계급사회(封建階級社會) 전제군주사회(專制君主社會)가 일어날 때까지 전성(全盛)하였다. The Christian empire failed to build a unified kingdom to which the Messiah could come. The Christian empire failed to ‎build a unified kingdom to ‎which the Messiah could ‎come.‎ Instead, the feudal system ‎strengthened, with the Holy Roman Emperor reduced to ‎just one of the great feudal ‎lords.‎ The feudal system would ‎dominate Europe until the rise ‎of absolute monarchy in the seventeenth ‎century. With the decline of feudalism at that time.


17 세기 중엽부터 봉건계급이 몰락됨에 따라, 지방으로 분할되었던 영주들의 권력은 국왕을 중심하고 중앙으로 집중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을 정치이념으로 하고 군림한 국왕은 절대의 권한을 가지게 되었다. 이와 같이 국왕이 봉건계급사회의 영주의 입장을 벗어나, 정치면에서의 군주사회(君主社會)를 사실상 형성하였던 것은 17세기 중엽으로부터 1789년 불란서혁명이 일어날 때까지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With the decline of feudalism at that time, the previously decentralized powers of the feudal lords came to be concentrated in the hands of kings of large nation-states. The kings came to command absolute power and justified it by the doctrine of the divine right of kings. Absolute monarchies flourished until the French Revolution in 1789.

다 음으로 종교사의 입장에서 본 기독교군주사회(基督敎君主社會)의 귀추는 어떠하였던가? 이 시대의 교황들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서지 못하고 세속화(世俗化)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심령적인 면에서 쇠퇴의 길을 밟아 가게 되었었다. 더구나 십자군전쟁(十字軍戰爭)에 패함으로 말미암아 교황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고, 한편 또 교황이 남불(南佛) 아비뇽에 유수(幽囚)됨으로써, 그들은 허명무실(虛名無實)한 입장에 떨어지게 되었었다. 그리하여 교황을 중심한 영적인 왕국이었던 기독교군주사회는 1517년 종교개혁(宗敎改革)이 일어날 때까지 존속되었던 것이다. With the Protestant Reformation in 1517, Western Christianity ceased to be a unitary spiritual monarchy.

이 시대의 경제면에서의 발전과정을 보면, 봉건적 경제제도는 봉건적인 정치제도가 몰락되고 중앙집권화한 전제군주사회에 있어서도, 의연히 존속되어 불란서혁명 때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When we examine the progress of economic life, we find that feudal economic arrangements persisted even when political feudalism was being replaced by absolute monarchy. Capitalism was growing in the cities and towns, where manufacturers and merchants joined forces with the kings and fought against the constraining feudal system. 그리하여 농업경제(農業經濟)의 면에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자본주의화해 가던 다른 경제면에 있어서도, 봉건제도의 영역을 넘을 수 없었다. 즉 자영농민(自營農民)들도 봉건 영주의 지배에 대항하기 위하여 국왕의 권력에 의뢰하였으나, 그들도 봉건제도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였고, 또 매뉴팩처(manufacture)의 경영자들도 봉건적인 분열이 불리하다는 것을 알고 중앙집권의 국왕과 결탁하였으나, 결국 그들도 역시 봉건화한 상업자본가(商業資本家)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역 사의 발전과정에서 봉건사회(封建社會)에 뒤이어 오는 것이 군주사회(君主社會)라면, 경제면에 있어서의 봉건사회에 뒤이어 오는 것은 무엇일 것인가? 그것은 바로 자본주의사회(資本主義社會)와 그 뒤에 따라오는 제국주의사회(帝國主義社會)인 것이다. 국정(國政)에 대한 독재가 군주주의의 특색인 것같이, 금융자본(金融資本)에 대한 독점이 자본주의, 특히 제국주의의 특색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17세기 중엽 전제군주사회(專制君主社會)가 시작될 무렵부터 싹이 터, 영국의 산업혁명기(産業革命期)로부터는 점차 원숙기로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자본주의사회가 오게 된 것은, 봉건적인 경제제도에 의하여 확보된 소단위의 경제기대(經濟基臺)를 더 큰 기대로 확립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세계적인 경제기대를 복귀하기 위하여, 자본주의는 제국주의 단계로 이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다시 기억해야 될 것은 하나님의 복귀 섭리의 전형노정(典型路程)은 서구(西歐)를 중심하고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논하는 제국주의도 서구를 중심하고 전개된 것을 지칭하는 것이다.

In the progress of economic history, feudalism was followed by capitalism, which was accompanied by the age of colonial expansion. As the consolidation of political sovereignty was the goal of absolute monarchy, monopolization of finances and capital was the goal of powerful capitalists. Capitalism arose concurrently with the rise of absolute monarchy in the seventeenth century and flourished during and after the Industrial Revolution. Capitalism’s purpose in the providence was to promote the accumulation of capital and the centralization of economic activity to an extent impossible under feudalism; this was even more the case with imperialism.

span style="color: #0066cc; background-color: #e3f2f6;">서 구에서 팽창된 제국주의사상(帝國主義思想)은, 서구의 각 기독교국가로 하여금 제1차 세차대전(第一次世界大戰)을 전후하여 지구의 전역에 걸쳐 식민지를 획득하게 하였다. 이렇게 되어 세계는 급진적으로 기독교문화권(基督敎文化圈)으로 들어오게 되었던 것이다.

The imperialist drive for colonial expansion which began in this period had, as its providential purpose, the establishment of a worldwide economic, political and religious foundation. This discussion focuses on European imperialism alone, because the course of God’s providence of restoration was centered on Western Europe. Competition among the nations of Western Europe led to their scramble for colonies all over the globe before World War I. This enabled the entire world to progress into Western Christian civilization.

6.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Democracy and Socialism


군 주주의시대(君主主義時代)에 뒤이어 온 것은 민주주의시대(民主主義時代)였다. 그런데 군주주의시대가 오게 되었던 이유는 이미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장차 메시아를 왕으로 모실 수 있는 왕국을 건설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 시대가 그러한 사명을 다하지 못하였으므로, 하나님은 이 사회를 깨뜨리고 메시아의 왕국을 재건하기 위한 새로운 섭리를 하시기 위하여 민주주의를 세우신 것이다. The age of monarchy gave way to the age of democracy. We recall that the purpose of monarchic society was to construct a kingdom which could support the Messiah and his reign. When this dispensation was not accomplished during the Christian empire, however, God began a process that would eventually tear down monarchic societies and raise up democracies in their place in order to commence a new providence for rebuilding a sovereign nation fit to receive the Messiah.

민 주주의(民主主義)는 주권을 인민(人民)에게 둠으로써, 인민이 그 민의(民意)를 따라 인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주의를 말한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메시아 왕국을 건설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군주주의(君主主義)의 독재를 깨뜨리고, 메시아를 왕으로 모시기 위한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새로운 정치제도를 세우려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Democracy is based on the sovereignty of the people; it is government of, by and for the people. Its purpose is to destroy the political monopoly of monarchy, which had deviated from God’s Will, and to establish a new political system capable of accomplishing the goal of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namely, to receive and support the Messiah as the King of Kings.

인 간은 역사가 흐름에 따라, 복귀섭리(復歸攝理)의 시대적인 혜택을 받아서 그 심령(心靈)이 점차 밟아지게 되므로, 이 섭리에 대응하는 인간의 본심(本心)은 자기도 모르게 종교를 찾게 되고, 또 종교를 찾는 그 본심은 결국 하나님이 최종적인 종교로 세우시고 섭리하시는 기독교를 찾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가 하나의 기독교문화권(基督敎文化圈)을 형성해 가고 있는 원인은 실로 여기에 있다.

그 러므로 역사가 종말에 가까워 갈수록 민의는 점차 기독교적으로 흘러갈 수 밖에 없으며, 이러한 민의에 따르는 민주정체(民主政體)도 또한 기독교적으로 변이(變異)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As history nears its consummation, the will of the people inclines toward Christian values. Democratic governments which abide by the will of the people also gradually become more Christian. 이와 같이 되어 기독정신(基督精神)으로 원숙한 민주정체의 사회로 메시아가 재림(再臨)하시면, 그는 민의에 의하여 하나님의 주권을 지상에 세워 지상천국(地上天國)을 복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는 결국 사탄편의 독재를 없이 하고,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중심한 하나님의 주권을 백성의 뜻을 따라 복귀하시려는 최종적인 섭리에서 나온 주의임을 알아야 한다. We need to understand that democracy was born to undermine satanic monopolies of power for the purpose of God’s final providence to restore, by the will of the people, a heavenly sovereignty under the leadership of the returning Christ. 그리하여 18세기 말엽에 이르러 전제군주주의(專制君主主義)에 대항하여 일어난 민주주의(民主主義)는, 영(英)·미(美)와 불란서(佛蘭西)에서 민주주의 혁명을 일으키어, 군주사회(君主社會)를 붕괴하고 민주사회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The democratic movements which rose against the absolute monarchies of the seventeenth and eighteenth centuries gave rise to revolutions in England, America and France. These revolutions destroyed monarchic societies and gave birth to today’s democratic societies.

우리는 위에서 역사발전의 관점에서 민주주의를 고찰하였거니와, 히브리사상과 헬라사상의 섭리적인 흐름으로 본 민주주의에 대하여는 다음 장으로 미루기로 한다.

다 음으로 종교면에서의 역사발전 과정에 있어서도, 1517년 종교개혁(宗敎改革)으로 인하여 교황을 중심한 국토 없는 영적인 왕국이 붕괴된 후에 기독교민주주의시대(基督敎民主主義時代)가 왔다. The progress of history in the religious sphere moved to the stage of democratic Christianity after monarchic Christianity was shattered by the Protestant Reformation of 1517.

원 래 교황을 중심한 이 왕국은 위에서 이미 논한 바와 같이 교황이 국왕과 하나가 되어 재림하실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왕국을 이루어야 할 것이었다. 그런데 교황이 이 사명을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마치 전제군주사회(專制君主社會)의 독재적인 주권을 깨뜨리기 위하여 민주주의가 나오게 되었던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교황의 독재적인 주권을 깨뜨리기 위하여, 기독교민주주의가 나오게 된 것이다. 따라서 종교개혁 이후에는, 교황이나 승려를 통하지 않고 각자가 성서를 중심하고 자유롭게 하나님을 찾아갈 수 있는 기독교민주주의시대가 오게 되었던 것이다.Accordingly, after the Protestant Reformation, the way was open for people to freely seek God through their own reading of the Bible, without the mediation of the priesthood.

이 와 같이 종교면에 있어서도 신도들이 어디에도 예속되지 않고 자유의지(自由意志)에 의하여 신앙길을 찾아갈 수 있는 시대에로 들어왔다. 이리하여 기독교민주주의(基督敎民主主義)는 장차 메시아가 어떠한 모습으로 재림(再臨)하신다 하더라도, 그를 자유롭게 찾아갈 수 있는 기독교적인 사회환경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한 편 경제사(經濟史)의 발전과정에 있어서도, 그 발전법칙에 의하여 제국주의(帝國主義)를 깨뜨리고 민주주의적인 경제사회(經濟社會)를 이룩하기 위하여 사회주의(社會主義)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Similarly, with the progress of economic history, socialist ideals arose which undermined imperialism and fostered a democratic form of economy. 그리하여 제1차 세계대전은 제국주의국가들의 식민지 획득을 위한 전쟁이라고도 볼 수 있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부터는, 제국주의의 식민정책(植民政策)을 타파하기 위한 국가적 민주주의가 대두하여, 열강(列强)들은 식민정책을 포기하고 약소국가(弱小國家)들을 해방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경제시대는 제국주의의 붕괴를 전기로 하여 사회주의적인 경제시대에로 전이(轉移)하게 되는 것이다. Upon the fall of imperialism, capitalism began to evolve into a form of economy which would foster equal and common prosperity.

공 산주의사회(共産主義社會)를 지향하는 사탄편의 세계에서 이 사회주의를 부르짖게 되는 것은 당연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방향과 내용은 전혀 다르나, 사회주의적인 경제체제에로 나아가려는 하늘편의 노정을 사탄편에서 앞질러 먼저 이루려 하기 때문이다. It is only natural for the satanic realm, which reached its apogee in communism, to promote socialism. This is because Satan always attempts to realize, in advance of God, a defective imitation of the divine plan. God’s plan is to develop a socialistic economy, although with a form and content utterly different from the state socialism that communism actually established.

하 나님의 창조이상(創造理想)으로 보면, 인간에게 부여된 창조본연(創造本然)의 가치에 있어서는, 그들 사이에 서로 어떠한 차이도 있을 수 없다. 따라서 하나님은 마치 우리 인간의 부모가 그 자식을 대하듯이, 누구에게나 균등한 환경과 평등한 생활조건을 주시려 하는 것이다. Just as parents love all their children equally, God desires to provide pleasant environments and living conditions equally to all His children. 그러므로 생산(生産)과 분배(分配)와 소비(消費)는 마치 인체에 있어서의 위장(胃腸)과 심장(心腸)과 폐장(肺臟)과 같이 유기적인 관계를 가져야 하므로, 생산과잉(生産過剩)에 의한 판로경쟁이나 편파적인 분배로 인하여 전체적인 생활목적에 지장을 가져오는 축적이나 소비가 있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필요하고도 충분한 생산과 공평하고도 과부족(過不足) 없는 분배와, 전체적인 목적을 위한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어야 하며, 마치 인체에 있어서의 간장(肝臟)과 같이, 기능 전체의 원활한 활동을 위한 적의(適宜)한 저축(貯蓄)을 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이다.


인 간은 이러한 이상(理想)으로써 창조되었기 때문에, 그 이상을 복귀할 수 있는 섭리역사(攝理歷史)의 종말기에 이르러, 민주주의적인 자유를 찾아, 인간적 본성을 더듬어 나아가게 되면, 결국 누구나 이러한 사회주의적인 생활체제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민의(民意)가 이러한 것을 요구하게 되면, 민의에 의한 정치도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게 되기 때문에, Because human beings are created to live in an ideal society, they will inevitably pursue a socialistic ideal as they strive for freedom and democracy and further search into their original nature. This is particularly true at the consummation of providential history, when this ideal can actually be realized. As this natural desire springs forth from within, politics in democracy, which is shaped by the will of the people, will also move in that direction. 최후에 가서는 하나님을 중심한 사회주의사회가 오고야 마는 것이다. Eventually, a socialistic society embodying God’s ideal will be established.

고 대 기독교사회(基督敎社會)에서도 우리는 사회주의적인 사상을 찾아 볼 수 있고, Early Christians lived according to this
ideal in some respects by sharing all their goods in common.2816세기 영국의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사상도 이러한 사회주의적인 것이었으며, 한편 또 영국의 산업혁명기(産業革命期)에 일어났던 오웬의 인도주의(人道主義)에 입각한 사상도 그러했으며, 또는 19세기로 들어오면서 영국의 킹슬리의 기독교사상에 의하여 가톨릭사회주의와 프로테스탄트사회주의 등이 나오게 되었던 것은, 모두 창조이상(創造理想)을 지향하는 인간 본성의 자연적인 발로에서 일어났던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Thomas More’s Utopia, written in sixteenth-century England, and Robert Owen’s humanistic socialism during the Industrial Revolution in England each expressed a vision of the socialist ideal. Catholic and Protestant socialist
movements have also shared this vision, one example being Charles Kingsley’s advocacy of Christian Socialism in England of the mid-nineteenth century. Their inclination toward socialism originated from the natural impulse of the original mind as it pursues the ideal of creation.


7. 공생공영공의주의와 공산주의 The Ideals of Interdependence, Mutual Prosperity and Universally Shared Values versus Communism (see note)

하 나님의 복귀섭리의 시대적인 혜택은, 사탄의 침범으로 말미암아 발휘할 수 없게 되었던 인간의 창조본성(創造本性)을 계발하여 나아가므로, 인간은 이와 같은 창조본성의 욕구에 의하여,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의 창조이상(創造理想)의 세계를 동경하고 그것을 찾아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하늘편의 사회주의사회(社會主義社會)를 (socialist society) 지향하는 인간의 본심은 마침내 공생공영공의주의(共生共榮共義主義)를 부르짖어,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완성한 이상세계(理想世界)를 이루는 데까지 나아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이 세계가 바로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중심한 지상천국(地上天國)인 것이다 In seeking for a socialistic society on Heaven’s side, their original mind has drawn them to the ideals of interdependence, mutual prosperity and universally shared values. The world in which these ideals will finally be realized is none other than the Kingdom of Heaven on earth, under the leadership of the returning Christ.

사 탄은 하나님의 섭리를 앞질러 먼저 이루어 나아가는 것이므로, 사탄편에서는 먼저 유물사관(唯物史觀)에 입각한 소위 과학적 사회주의를 부르짖어 공산주의세계(共産主義世界)에로 나아가는 것이다. Since Satan mimics God’s providence in advance, the satanic side has advocated “scientific socialism” based on the theories of dialectical and historical materialism and has built the communist world. 그들은 이러한 역사발전관(歷史發展觀)에 입각하여, 인류역사는 원시공산사회(原始共産社會)에서 다시 공산주의사회에로 돌아간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 원인은 전혀 모르고 있다. The theory of historical materialism asserts that human history began as a primitive collective society and will be consummated with the creation of an ideal communist society. The evident errors of this theory are due to the fact that it does not take into account the fundamental cause of historical progress.

하 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에게 지상천국(地上天國)의 실현을 약속하였던 것이므로, 인간과 혈연관계(血緣關係)를 먼저 맺은 사탄이 타락인간을 중심하고 원리형(原理型)의 비원리세계(非原理世界)를 먼저 이루어 나아가는 것을 허락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복귀하시려는 지상천국을, 사탄이 앞질러 이루어 놓은 원리형의 비원리세계가 바로 공산세계인 것이다. After creating human beings, God promised to realize the Kingdom of Heaven. However, because Satan had formed kinship relations with people before God did, God had to permit him to construct an unprincipled world through fallen people in a distorted imitation of the ideal society which God intends to accomplish on the earth. The communist world is this unprincipled world built by Satan.

마 치 군주주의(君主主義)의 정치적인 독재를 막고, 그 주권을 인민의 것으로 돌리려는 데서 민주주의(民主主義)가 나오게 된 것과 같이, 국가의 재산이 어느 특수한 개인이나 계급에 독점을 당하는 제국주의적(帝國主義的)인 경제체제를 타파하고 인민들이 그것을 균등하게 향유(享有)할 수 있는 경제체제를 수립하기 위하여, 사회주의(社會主義)를 거쳐서 하늘편에서는 공생공영공의주의(共生共榮共義主義)를 지향하고, 사탄편에서는 그것을 앞질러 먼저 공산주의(共産主義)를 지향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주의는 진정한 민주주의적 경제사회를 이루기 위하여 나오게 되는 것이다.


우 리는 위에서 서구(西歐)를 중심하고 이루어진 복귀섭리역사(復歸攝理歷史)가, 종교사와 정치사와 경제사의 3면으로 분립되어, 각각 공식적인 노정을 통하여 발전하여 나왔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러면 이것들이 어떻게 하여서, 서로 동일한 역사노정에서 융합되는 섭리역사로 종결을 지어, 재림이상(再臨理想)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게 될 것인가? It was explained earlier that in the history of Western Europe as steered by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the three aspects of religion, politics and economy have progressed separately through their own paths of development. How can they come together at one point at the consummation of providential history to lay the foundation for the Second Advent of Christ?

이 미 위에서 우리는 인간의 영육(靈肉) 양면의 무지(無知)를 타개하기 위한 종교와 과학이, 하나의 과제로서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역사발전이 3분되어 발전하여 왔다는 것을 밝혔다. 따라서 이렇게 3부면(三部面)으로 발전해 온 역사가 하나의 이상(理想)을 실현하는 초점으로 귀결되기 위하여서는, 종교와 과학을 완전히 통일된 하나의 과제로서 해결해 줄 수 있는 새로운 진리(眞理)가 나와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진리에 입각한 종교에 의하여 온 인류가 하나님의 심정에 귀일(歸一)함으로써, 하나의 이념을 중심한 경제의 기대 위에 창조이상(創造理想)을 실현하는 정치. For the paths of religion, politics and economy to converge and realize God’s ideal, a new expression of truth must emerge which can completely integrate religion and science. The religion founded upon this truth will lead all of humanity to become one with God in heart. Such people will build an economy in accordance with the divine ideal. These will be the foundations for a new political order which can realize the ideal of creation. 사회가 이루어질 것이니 ,이것이 바로 공생공영공의주의에 입각한 메시아왕국인 것이다. This will be the messianic kingdom built on the principles of interdependence, mutual prosperity and universally shared values.

Chart3: The Progress of History as Guided by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Chart3: The Progress of History as Guided by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1. Tit. 2:14; 1 Pet. 2:9-10
  2. Josh. 5:2-5‎
  3. Exod. 5:3‎
  4. Exod. 16:23
  5. cf. Moses and Jesus 2.2.2.3
  6. Isa. 9:6
  7. I Sam. 8:19-22; 10:1-24
  8. I Sam. 15:1-23
  9. I Kings 11:3-7
  10. I Kings 18:19-40
  11. II Kings 17:7-23
  12. Isa. 9:6; Luke 1:33
  13. II Kings 24; 25; II Chron. 36; Jer. 29:10; 39:1-10
  14. Ezra 3:7-13; Ezra 6:1-15
  15. Ezra 7:1-10; Neh. 8
  16.  cf. Creation 3.2
  17. Rev. 11:15
  18. Likewise, the course of historical development as discussed by the Marxist theory
    of historical materialism is also applicable only to the history of Western Europe.
  19. cf. Creation 6.2
  20. cf. Eschatology 5.1
  21. Gen. 2:7
  22. cf. Preparation 1
  23. Acts 4:3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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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adapted from http://www.tongil.org/ucbooks/Divine_Principle-Korean/D_P_Korean-Pt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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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섭리 역사의 각 시대와 그 연수의 형성 Chapter 3 The Periods in Providential History and the Determination of Their Lengths | 제5장 메시아 재강림준비시대 Chapter 5 The Period of Preparation for the Second Advent of the Messiah


sa.ffwpu.asn.au | 원리강론 Exposition of the Divine Principle (Wolli Kangron, 1966)